[세계포럼] 문제는 혁신위가 아니다

원재연 2023. 7. 5. 23: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존재감 보이지 않는 민주당 혁신위
이재명 체제선 역할에 태생적 한계
당 위기는 민심 외면한 지도부 책임
이 대표 결자해지로 쇄신 물꼬 터야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지난달 6일 “공론화 작업도 없고 검증도 제대로 안 된 이번 (이래경) 사태가 이재명 대표 체제의 본질적인 결함”이라면서 이 대표 사퇴를 촉구했다. 이래경 사단법인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천안함 자폭’ 등 과거 발언 논란으로 민주당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지 9시간 만에 사퇴한 해프닝을 꼬집은 것이다. 이 의원은 “이 대표의 영향력이 막대하게 미치는 상황 속에서 당내 강성들도 득세하고 있고, 팬덤이 득실거리고 공격하는 상황에서 온전하게 혁신위의 리더십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이 대표 체제가 존속하는 한 민주당 혁신위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진단이었다.

상황은 이 의원 말대로 흘러갔다. 이 이사장이 낙마한 지 열흘 만에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새로운 혁신위원장에 발탁됐다. 하지만 김은경 혁신위는 출범한 지 보름이 지나도록 존재감이 없다. 혁신위가 ‘1호 혁신안’으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서와 체포동의안 가결 당론을 요구했지만 지도부로부터 사실상 퇴짜를 맞았다. 지도부가 내놓은 답은 “체포동의안 부결을 위한 임시국회를 소집하지 않고, 회기 중 체포동의안 요구가 올 경우 당론으로 부결을 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원재연 논설위원
지도부는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에 대해선 “의원 개개인의 권한이니 의원들 동의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절차나 형식이 필요하다”면서 의원들에게 공을 넘겼다. 체포동의안 가결 당론 요구와 관련해서도 “부결을 당론으로 정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을 뿐이다. 민주당은 노웅래·이재명·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때도 부결을 당론으로 정하지 않고 의원 개인의 자유투표에 맡겨 사실상 부결을 유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도부는 “총의를 모아나가겠다”고 했지만 지난달 30일 의원총회에서도 첫 혁신안은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지도부가 혁신위를 얼마나 가볍게 보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났다.

당내에선 “당 지도부의 그런 입장에 혁신위가 왜 가만히 있는지 의아스럽다”는 비판이 나온다. 첫 혁신안이 거부됐으면 김 위원장이 직을 걸고라도 항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일 것이다. 맞는 말이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혁신위원장이 당 대표로부터 전권을 위임받는다고 해도 지도부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역사적으로 혁신위가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일 것이다. 혁신위는 대부분 정치적 위기에 빠진 당 대표가 비난을 피하기 위해 내세운 ‘총알받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은경 혁신위도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비명계인 조응천 의원은 “불체포특권이나 꼼수 탈당 같은 게 민주당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혁신위가 왜 생겼나. 현 지도부가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민주당이 혁신위를 꾸리기로 한 건 온갖 당내 비리와 갈등으로 민심이 등을 돌린 상황을 타개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이 대표 사법리스크와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김남국 의원의 코인 보유·거래 의혹, 팬덤정치 등이 혁신위 출범의 계기가 된 것이다. 혁신위가 이런 문제들의 원인 해결에 나서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도 김은경 혁신위가 이 대표 체제에 대한 평가 없이 곁가지만 건드리는 건 태생적 한계 탓이다. 이 대표가 세운 혁신위가 이 대표와 그의 측근 등이 관련된 각종 비리 의혹에 분명히 선을 긋고 근본적 반성과 획기적 쇄신에 나설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민주당이 혁신위를 띄울 정도로 위기에 빠진 데는 이 대표 책임이 가장 크다. 이 대표가 결자해지하는 게 순리다. 당권을 쥔 채 ‘들러리 혁신위’를 내세워 달라지겠다는 시늉만 하면서 위기를 돌파하려는 심산이라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김은경 혁신위도 ‘용두사미’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라진 그 많은 혁신위에 이름을 추가할 뿐이다. 진짜 혁신이라야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원재연 논설위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