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충돌의 화약고…피의 땅 ‘제닌’
이스라엘엔 테러의 인큐베이터, 팔레스타인엔 투쟁 보루
2000년 2차 인티파다 때 팔 대승에 ‘제닌그라드’라 불려
이, 이틀간 맹폭 후 병력 철수…팔 13명 사망·150명 부상
이스라엘이 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북부 제닌에서 병력을 철수하며 이틀간의 군사작전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소탕을 명분으로 제닌을 맹폭했지만, 그 이면엔 제닌이라는 지역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이스라엘인에 제닌은 수십년에 걸쳐 많은 생명을 앗아간 테러리즘의 두려운 인큐베이터인 반면 팔레스타인엔 무장 투쟁의 보루로 오랜 유산을 지닌 곳”이라고 전했다.
제닌은 1930년대 영국 점령 시기 때부터 팔레스타인 강경파가 밀집한 곳으로 유명했다. 당시 이곳에서는 영국 통치 반대 운동이 가장 격렬하게 전개됐고, 다수의 영국 관리가 암살됐다. 영국군은 보복으로 제닌의 4분의 1을 초토화했지만, 반외세 세력은 끊임없이 영국을 괴롭혔다.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를 수립하자 고향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 상당수가 제닌으로 피신했고, 그 후손들 역시 제닌에 뿌리를 내렸다. 이들 대부분은 이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가입했는데, 가자지구를 거점으로 하는 하마스가 서안지구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제닌이 존재감을 드러낸 결정적 계기는 2000년 발발한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투쟁)다. 민간인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인 52명이 제닌을 중화무기로 공격하던 이스라엘군 23명을 살해한 사건은 지금까지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아 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는 이를 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독일을 크게 이겼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빗대 ‘제닌그라드’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올해 제닌에서만 폭탄 테러가 50건 이상 발생했고, 팔레스타인 각지에서 이스라엘에 저항한 무장 세력 19명이 제닌에 몸을 숨겼다고 주장했다. NYT는 “제닌은 여전히 저항의 중심지라는 명성에 맞게 살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제닌은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해 반이스라엘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우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있는 라말라에서 한참 떨어진 서안지구 최북단에 위치해 중앙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는다. 반대로 이스라엘 경계선에선 불과 3마일(약 4.8㎞)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게릴라전을 펼치기 쉽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집요한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내에서도 최악의 실업률과 빈곤율을 기록하는 등 거친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팔레스타인 정치 분석가인 누르 오데는 NYT에 “제닌은 부유하거나 산업화한 도시가 아니다”라며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심하게 분열돼 있을 때 ‘우리는 하나가 돼 싸운다’는 공동체 정신과 소명을 지닌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이틀간 공격으로 지금까지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은 13명으로 집계됐다. 부상자도 최소 150명을 넘었고, 이 가운데 30여명은 위중한 상태다. 피란민 행렬도 이어졌다. AP통신에 따르면 니달 알오베이디 제닌 시장은 이날 “제닌 난민촌에 거주하는 4000여명이 친척 집이나 대피소로 피신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이 민가에 침입해 일반인을 감금하고, 응급환자를 실은 구급차 통행을 차단했다는 목격담이 쏟아졌다.
팔레스타인의 반격도 계속됐다. 로이터통신 등은 이날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20대 팔레스타인 남성이 군중을 향해 차로 돌진하고 흉기를 휘둘러 8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가자지구에선 이스라엘을 겨냥해 로켓 5발이 발사됐다. 이스라엘군은 저고도 방공망 아이언돔으로 모두 요격했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제닌 근처 군 초소를 방문해 “지금은 임무를 마무리하지만, 제닌에서 이뤄진 광범위한 작전은 일회성이 아니다”라며 추가 공격을 예고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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