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우리 벗어난 ‘갈비 사자’, 여생은 탁 트인 청주동물원서

이삭 기자 2023. 7. 5.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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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부경동물원서 이송
정기 검진 등 건강 관리도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됐던 김해 수사자가 5일 청주동물원에 이송돼 우리 안을 활보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후 충북 청주동물원. 온도조절 장치가 탑재된 무진동 차량이 동물원 입구를 통과해 사자들이 있는 우리 앞에 도착했다. 차량 화물칸이 열리자 특수제작된 케이지 속 수사자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사자의 상징인 갈기는 풍성했지만 몸통에는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네 다리도 근육이 빠져 앙상한 상태로 뼈가 보였다.

경남 김해 부경동물원에서 이사 온 이 사자는 ‘갈비 사자’로 불리는 늙은 수사자다. 나이는 스무 살로 사람으로 치면 100세가 넘는다. 2004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태어나 2016년 부경동물원으로 옮겨졌다. 2013년 문을 연 부경동물원은 민간 동물원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이 동물원이 동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비좁은 우리에서 이 사자가 삐쩍 마른 채 힘없이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시민들이 김해시 홈페이지 등에 “사자를 구해달라”는 글을 잇달아 올리기도 했다.

청주동물원은 지난달 부경동물원에서 이 사자를 데려오기로 했다. 사자를 실내의 협소한 우리에서 벗어나 야외 방사장에서 자연과 가까운 환경하에 보호하기 위해서다. 부경동물원 측도 이관에 동의했다. 청주동물원의 ‘사자 이송작전’은 이날 오전 11시 시작됐다. 오후 6시 사자를 태운 무진동 차량이 부경동물원에서 270㎞ 정도 떨어진 청주동물원에 도착하면서 마무리됐다. 꼬박 7시간이 걸린 셈이다.

청주동물원은 영상 25도를 유지할 수 있는 온도조절 장치가 탑재된 무진동 차량으로 사자를 이송했다.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은 “사자가 멀미하는 것을 막으려 차량을 시속 80~90㎞ 속도로 운행하고, 한 차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었다”며 “이 때문에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고 밝혔다.

청주동물원 측은 이 사자를 야생동물보호시설에서 보호할 계획이다. 지난해 지어진 야생동물보호시설은 1652.89㎡ 규모로 실내동물원이나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생활하는 동물을 보호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열두 살 암컷 사자와 열아홉 살 수컷 사자가 있다. 수사자가 머무르는 격리 방사장은 495.8㎡ 크기로 부경동물원 실내사육장보다 수십배 넓은 면적이라고 청주동물원은 설명했다. 청주동물원은 이 사자의 이름을 ‘바람이’라고 정했다. ‘앞으로 잘 살길 바란다’는 뜻에서다.

청주동물원은 바람이의 건강을 위해 소고기와 닭고기 등 영양가 높은 먹이를 주고, 영양제도 주기적으로 놔줄 계획이다. 또 혈액검사, 단층촬영, 초음파검사 등 건강검진도 한다. 청주동물원에는 사육곰 농장에 갇혀 있다가 2018년 구조된 ‘반이’와 ‘달이’도 있다.

김 팀장은 “늙은 바람이가 자연과 가까운 청주동물원에서 여생을 행복하게 보냈으면 한다”며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흙을 밟으며 행동 동화 프로그램 치유도 받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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