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원 “소셜미디어 게시물, 정부는 간섭말라”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거짓 정보가 소셜미디어에 퍼질 때 정부는 손을 놓고 있어야 할까. 아니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소셜미디어 운영사에게 거짓 정보를 내리라고 해야 할까. 비교적 새로운 소통 수단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오가는 정보를 어떻게 통제하는 것이 합당한지를 두고 미 사회에서 논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정부가 온라인 콘텐츠를 변경·삭제·관리하기 위해 소셜미디어 회사에 연락을 취하는 것조차 안 된다는 연방 법원의 결정이 4일(현지 시각) 나왔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를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지만, 거짓 정보가 창궐해 오히려 민주주의를 해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격론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날 나온 결정은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온라인 콘텐츠 또한 수정헌법 1조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를 보장 받는 만큼, 연방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를 담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필두로 한 미 민주당 정부는 온라인 공간의 거짓 정보를 민주주의의 위협으로 규정하고 대응해 왔다. 이번 판결은 바이든 정부의 이 같은 소셜미디어 대응책에 제동을 건 것으로, 정적(政敵)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의 기조와 부합한다.
이날 루이지애나 서부 연방 법원의 테리 다우티 판사는 보건복지부와 연방수사국(FBI)을 포함한 정부 기관들이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는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콘텐츠의 제거·삭제·억제·축소를 어떤 식으로든 촉구·권고·압박·유발할 목적”으로 소셜미디어 회사에 연락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다. 앞서 공화당 소속인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주 법무장관과 앤드루 베일리 미주리주 법무장관이 바이든 행정부가 소셜미디어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달라며 제기한 소송과 관련해 ‘예비적 금지 명령’부터 내린 것이다.
이 명령을 내린 다우티 판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이다. 그는 이날 “원고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미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공격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원고들이 본안 소송에서 정부가 반대파를 침묵시키는 데 권력을 이용해 왔다는 점을 밝혀내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본안 소송에서도 정부 권한을 제약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예고로 볼 수 있다.
미 정부는 오랫동안 아동 성 학대, 인신매매 같은 범죄 활동에 연관된 유해한 콘텐츠에 대응하고 테러리스트 그룹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소셜미디어 회사들과 협력해 왔다. 2016년 미 대선 당시 러시아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선거 관련 허위 정보를 유포한 정황이 드러난 이후, 정부 당국자와 기업들 간의 연락은 더욱 빈번해졌다고 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는 적성국에 의한 허위 정보 유포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법원의 이번 결정이 나오게 된 계기는 코로나 팬데믹이었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대중 상업 시설의 영업 제한, 마스크 착용, 백신 접종 등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었다. 반면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이런 조치들이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한다고 맞섰다. 논쟁이 커지는 가운데 트위터·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회사들이 코로나 및 백신에 대한 허위 정보가 담긴 게시물을 대거 삭제하고 관련 계정을 정지시키자, 공화당은 진보 성향의 테크 기업들이 보수 쪽의 주장을 묵살하는 ‘검열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의 2020년 대선 불복과 트럼프 지지자들이 2021년 초 일으킨 연방 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도 논쟁을 키웠다. 민주당은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폭동을 사실상 선동했다고 보고 소셜미디어 책임론을 내세웠다. 아울러 의사당 난입 사태 이틀 후 트위터는 “폭력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며 트럼프의 계정을 정지했다. 트럼프와 공화당에선 소셜미디어가 민주당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인식이 커졌고, 결국 이날 ‘정부 기관들이 특정 콘텐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그 콘텐츠를 삭제하기 위해 소셜미디어 회사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보고를 요구할 수 없다’는 법원 결정까지 이끌어 냈다.
백악관과 법무부는 법원의 이번 결정에 항소할 가능성이 크다. 재판 과정에서 공방은 더 커질 수 있다. 1791년 만들어진 미 수정헌법 1조는 사기·위증 등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의사 표시와 발언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미 법원은 여러 판례를 통해 거짓말이나 증오 발언조차 제약해서는 안 된다고 할 정도로, 광범위한 자유를 보장해 왔다. 하지만 전화기가 발명되기도 전인 2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이 법이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지, 온라인에서 확산하는 거짓 정보를 그냥 방치해 피해자가 나오는 것이 타당한지 등을 두고 미 사회의 격론은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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