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계 스타 배우 강길우, 어디서 봤더라?[TEN피플]
[텐아시아=이하늘 기자]
매년 영화제를 찾는 관객이라면, 이 배우의 얼굴 낯익을 것이다. 선하고 깊은 눈매와 지켜주고 싶은 호리호리한 몸에서 튀어나오는 중후한 목소리의 배우 강길우다. 최근에는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몸값'과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등에 출연해 독립과 상업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종횡무진 활동 중이다. 강길우가 오는 12일 독립영화 '비밀의 언덕'으로 돌아온다. 그는 갈팡질팡하는 12살 명은의 아빠 '성호'를 연기했다. 꾸준히 독립영화를 찾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자, 강길우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어! 이 배우 매력 있네'하며 눈에 익혀두면 좋을 것 같다. 독립영화계 스타 배우 강길우, 어디서 봤더라?
'시체들의 아침'(2018) 감독 이승주 / 성재 역
강길우, 이 세 글자를 기억하게 된 것은 바로 한 작품에서 비롯됐다. 29분가량의 단편영화 '시체들의 아침'에서 묘한 매력을 풍기는 강길우를 본 이후부터였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독립영화 감독 성재(강길우)는 이사를 앞두고 1000개가 넘는 DVD를 모두 팔아치우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는 인터넷 중고장터에 DVD를 팔겠다는 글을 올린다. 영화감독을 하면서 돈도 없고 비전도 없는 상황. 그의 앞에 갑자기 여중생 민지(박서윤)이 DVD를 사겠다며 이른 아침부터 집 앞에 나타난다.
'시체들의 아침'이라는 제목은 좀비 영화의 대부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1978년 개봉작 '시체들의 새벽'에서 비롯됐다. 극 중에서 민지가 원하는 영화가 바로 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본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영화에 대한 헌정이라고 밝힌 바 있는 이승주 감독의 말처럼 영화 곳곳에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배우 강길우는 뭔가 찌질하고 쪼잔하다. 여중생과 DVD를 두고 기 싸움을 벌이는 것과 DVD를 팔지 못하는 모습이 그렇다. 여중생 민지가 '시체들의 새벽'만 개별적으로 팔라고 하자, 성재는 끝까지 판매할 수 없다고 한다. 그의 축 늘어난 바지와 목까지 추켜올린 점퍼와 함께 영화를 보면서 깜짝깜짝 놀라는 모습에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를 사랑하던 과거의 끈을 붙잡듯, DVD를 끝까지 붙잡는 그 표정이 인상적이다. 아련하면서도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강길우의 눈빛이 이 작품의 중심을 잡아준다. 만약 강길우 배우에게 입덕할 계획이라면, 이 작품부터 보기를 추천한다.
'초록밤'(2022) 감독 윤서진 / 원형 역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CGK촬영상을 수상한 '초록밤'은 영화에 내려앉은 초록의 이미지만큼이나 강길우의 무력하면서도 무관심한 표정이 강렬하다. '초록밤'은 밤잠에 쉽게 들지 못하는 두 남성을 조명한다. 아파트 내에 거주하며 경비 일을 하는 중년 남자(이태훈)와 장애인 심부름센터를 하면서 밤을 꼬박 새우는 그의 아들 원형(강길우)이다. 낮과 밤이 전복된 기묘한 상황에서 초록의 생동감은 사라지고, 불안한 죽음의 기운들이 넘쳐흐른다.
강길우가 연기한 원형은 먼저 나서서 결정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장례식장에서 고모들이 다투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오래 만난 연인에게 결혼하자고 말하지도 못한다. 얼굴에는 삶에 대해 고단함이, 깊게 팬 눈에는 절망감이 가득하다. '시체들의 아침'에서 장난기가 묻어나는 표정을 보였다면, '초록밤'에서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노동을 마치고 실려 가는 듯, 강길우의 얼굴에는 다른 감정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반복되는 하루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고 30대가 되도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상황이 공허한 눈빛으로 대변된다. 이때, 강길우의 연기는 기묘한 초록색을 뚫고 나와서 극을 장악한다. 애써 꼿꼿하게 앉지 않고 버거운 현실을 감당해내는 그의 신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둔내면 임곡로'(2021) 감독 전시형/ 정도 역
시골의 한적한 마을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이 있다. 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떠나는 만큼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숙소로 가던 도중에 방문한 식당에서 낯선 아저씨들을 만난다.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낯선 이들을 태우면서 일이 발생한다. 이 작품은 현실 서스펜스 스릴러를 담아낸 단편영화 '둔내면 임곡로'다. 20분가량의 짧은 단편 영화로 몰입감도 높고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강렬하다.
'둔내면 임곡로'에서 강길우는 오지랖 넓고 눈치가 없는 남편 정도를 연기한다. 시시콜콜 타인에게 모든 일을 얘기하는 천진함과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은 답답함의 결정체다. 선한 눈매에 거절하지 못하는 태도는 아내 유영(기도영)의 화를 북돋운다. 차 안에서 낯선 이들은 사람을 죽었다는 섬뜩한 이야기를 하고, 놀란 마음에 정도는 사슴을 차로 치게 된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불편한 동행을 지속하는 부부. 영화 속에서 강길우의 모습은 너무 무책임하고 답답하다. 위화감 가득한 남자들과의 동행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을 현실감 넘치게 담아냈다. 더욱이 겁에 질려서 핸들을 꽉 움켜쥐는 모습으로 '하 남자'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답답하면서도 가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는 묘한 매력의 강길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한강에게'(2019) 감독 박근영 / 길우 역
영화 '한강에게'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 길우(강길우)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여자친구 진아(강진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용기를 내서 길우를 보고 슬픔이 끼어들지 않도록 애써 바쁘게 움직이는 진아. 시집을 준비하던 시인 진아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고, 그녀의 쓸쓸한 표정에 왈칵 눈물이 나는 작품이다.
가난한 연극배우이자 진아의 남자친구로 등장하는 강길우는 현실 남자친구 그 자체를 연기한다. 반복적인 이유로 다투는 연인의 모습과 현실의 무게에 애써 외면하는 상황들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특히 사고가 나기 전, 한강에서 다투는 신은 공감을 넘어 상황에 빠져들게 한다. 한 번쯤은 연인과 싸워본 사람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휙 돌리고 한숨을 푹푹 내쉬는 강길우의 모습에 익숙한 모습 볼 테다. 그만큼 현실감 넘치는 싸우는 연기와 미소를 짓게 되는 사랑스러운 연인을 표현해내기도 했다. "길우라는 캐릭터는 70~80퍼센트 정도 자신과 닮아있다"는 강길우의 말처럼 이 작품으로 인간 강길우도 살짝은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외에도 한국 최초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엄마의 땅:그리샤와 숲의 주인'(2023)에서 톡챠의 목소리로 출연해 극의 균형을 잡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 헤어졌는지도 모른다'(2023)에서는 경일로 분해 아영(정은채)의 연애에 신선함을 주기도 한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 티빙 오리지널 '몸값', JTBC '재벌집 막내아들'까지
최근 들어 강길우의 얼굴을 드라마 매체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는 문동은(송혜교)의 과거 담임 선생님의 아들 김수한으로 등장했다. '더 글로리'에서 강길우는 반듯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아버지를 죽일 만큼 추악한 인물로 등장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몸값'에서는 소름이 끼치는 민 씨를 연기했다. 민 씨는 지하에서 파트너와 함께 시신들에서 장기를 꺼내고 물고기 밥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인물. 눈앞을 덮는 길게 내린 머리카락과 그 틈으로 보이는 눈에 긴장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드는 섬뜩한 인물을 연기해 몰입감을 높였다. '몸값'은 5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진동기(조한철)의 충직한 비서 백 상무를 맡아 극의 긴장감과 코미디를 배가시켰다.
2013년 연극 '마법사들'로 데뷔한 강길우는 최근에 드라마에서 얼굴을 비추고 있지만 사실 독립영화계에서는 이름을 날리는 베테랑이다. 꾸준하게 독립영화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매력을 알림과 동시에 독립영화계를 확장한 강길우.
독립영화는 소위 마니아만이 본다고 알려져있다. 상영하는 시간대가 극단적이거나 지역에서는 상영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소문이 나는만큼, 더 많은 관객들이 보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독립영화들에 관심을 갖고 찾아본다면, 어디선가 본 매력넘치는 배우들을 찾음과 동시에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독립영화의 매력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영화 '비밀의 언덕'은 오는 12일 개봉한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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