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 변제 공탁 불수리는 정당” 대법 판례 있다
외교부 “판례상 허용 안 되는 행위” 월권 주장과 달리
공탁관의 권한 유무 아닌 판단 이유·정당성 판단
정부가 일본 기업을 대신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를 배상한다며 법원에 낸 공탁을 광주지법 공탁관이 ‘불수리’ 결정하자 외교부는 “대법원 판례상 허용되지 않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교부 주장과 달리 대법원은 공탁관이 ‘제3자 변제 법리’를 이유로 한 공탁 불수리 결정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2009년 5월 공탁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사건에서 이 같은 판결을 확정했다.
이 사건에서는 A가 B에 대한 C의 채무를 대신 변제하려고 했으나 B는 C의 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변제금 수령을 거절했다. 이에 A가 법원에 공탁을 하려고 하자 법원 공탁관은 ‘A는 이해관계 있는 제3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공탁을 수리하지 않았다. A는 자신이 이해관계 있는 제3자에 해당한다며 이의신청을 냈다. 정부의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논리와 구조는 약간 다르지만 쟁점이 같다. 강제동원 피해자 측은 피해자 반대에도 채무자인 일본 기업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인 정부가 배상하는 것은 민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의신청 사건을 심리한 창원지법 진주지원, 창원지법, 대법원 모두 공탁관의 불수리 결정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공탁관에게 판단 권한이 있는지 여부는 쟁점으로 다루지 않았다. 공탁관이 제3자 변제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불수리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그러한 판단 내용이 정당한지만 판단했다. 법원은 그 내용도 정당하다고 봤다.
외교부는 1997년 대법원 판례를 들어 광주지법 공탁관이 제3자 변제 법리를 이유로 불수리 결정한 것은 월권이라고 비판했는데, 그보다 최근에 나온 대법원 판례에서 유사한 결정이 유효하다고 인정된 것이다. 외교부는 또 “공탁공무원은 공탁 사무의 기계적·형식적 처리를 전제로 운영된다는 게 확립된 대법원 판결”이라고 했다. 하지만 1997년 대법원 판결문을 상세히 살펴보면 공탁공무원이 제3자 변제 법리를 이유로 불수리할 권한이 없다는 게 아니라 공탁관의 형식적 업무처리를 위해 피공탁자가 제대로 특정돼야 한다는 게 판단 취지였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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