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체육관서 오늘도 ‘희망의 슛’

정필재 2023. 7. 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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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퇴출 데이원 남은 선수들
대관료 밀린 건물서 매일 땀방울
1월부터 급여 밀려 KBL서 지원
철거비 없어 체육관 간판도 못 떼
“인수기업 생겨 계속 함께 뛰고파”
4일 오후 경기도 고양체육관. 지하 농구코트를 가로막은 커다란 철문 사이로 기합소리가 새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장신의 젊은 청년들이 열정적으로 농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2022~2023시즌 오렌지색 ‘캐롯’ 유니폼을 입고 팀을 4강 플레이오프(PO)까지 올려놓은 선수들이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 이들은 체육복 하나 맞춰 입지 못한 채 ‘오리온스’라고 적힌 코트 위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김강선(오른쪽)이 4일 고양체육관에서 후배들의 슛 연습을 지켜보고 있다. 고양=정필재 기자
프로농구 4강에 빛나는 이들은 데이원이 KBL에서 제명되면서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양궁농구’로 코트 위 돌풍을 일으켰던 이들이 KBL의 지원 없이 훈련조차 할 수 없는 처지에 내몰렸다. 새로운 형식의 농구단을 표방하며 리그에 뛰어든 데이원은 개막 첫 행사인 미디어데이 때부터 가입비 문제로 말썽을 일으켰다. 시즌 중에는 선수들 급여가 밀렸고, PO를 앞두고도 가입금을 놓고 우려를 낳았다. 결국 데이원은 팀을 운영할 여력이 없다며 두 손을 들었고, 농구판에서 쫓겨났다.
KBL 고위 관계자는 “데이원 측에서 지난달 15일 유럽에서 200만유로(28억원)가 입금되니 기다려 달라는 요청에 임시총회 날짜를 지난달 16일로 정했던 것”이라며 “정작 회의가 열리는 날 데이원은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났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체육관 이용 대금도 제때 내지 못한 채 떠난 데이원이 한 건 입장문을 내놓은 게 전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팀은 사라졌지만 ‘고양 캐롯 점퍼스’라고 적힌 간판이 4일 고양체육관에 걸려 있다. 고양=정필재 기자
데이원은 떠났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쌓여 있다. 지난 1월부터 내지 못한 고양체육관 사용료 1억8500만원과 근처 식당과 병원, 청소용역업체, 경호업체 등에도 대금을 치러야 한다. 고양체육관에 ‘고양 캐롯 점퍼스’라고 적혀 있는 간판 역시 철거비용 때문에 그대로 붙어 있다. 결국 KBL은 선수들에게 급여는 물론 훈련 트레이너와 식사, 또 일부 선수들의 숙소까지 지원해 주고 있다.
이런 복잡한 사정에도 연습코트 위에 서 있는 선수들은 에너지가 넘쳤다. 한 팀을 이룬 18명 가운데 대표팀에 차출된 전성현(32)과 이정현(24), 또 입대선수 6명을 제외한 10명이 이날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호흡을 맞췄다. 2022~2023시즌 입단한 안정욱(23)은 높게 공을 띄워 던졌고, 동기인 조재우(24)는 이 공을 받아 그대로 덩크슛을 뽑아내며 훈련장 분위기를 띄웠다. 안정욱은 “패스가 좋아야 이런(앨리웁) 것도 할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조재우는 “분위기가 처져 있는 게 싫다”며 “ 형들을 웃게 해주고 싶어 더 힘을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2023∼2023시즌 고양 캐롯을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무대에 올려놨던 선수들이 4일 고양체육관에서 소속 팀이 없는 상태로 새 시즌을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 고양=정필재 기자
조재우(오른쪽)가 4일 고양체육관에서 가진 훈련 도중 안정욱의 패스를 받아 덩크슛을 꽂아 넣고 있다. 고양=정필재 기자
데이원은 1월부터 선수단 급여를 주지 못했다. 김진유(29)는 “부모님과 영상통화도 자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지만 이 사태 이후 부모님과 연락이 줄었다”며 “속상했지만 간식과 식사도 보내주면서 응원해 주는 팬들 덕분에 포기할 수 없었다”고 돌아봤다. 급여가 밀린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똘똘 뭉쳐 이겨냈다. 조재우는 “자취방 월세를 못 냈고, 수도와 전기마저 끊길 상황이었지만 형들이 도와줬다”며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니콜라 요키치”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안정욱은 “저는 강선이형을 가장 좋아한다”며 밝게 웃었다.
2023∼2023시즌 고양 캐롯을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무대에 올려놨던 선수들이 4일 고양체육관에서 소속 팀이 없는 상태로 새 시즌을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 고양=정필재 기자
코트 위에서 화기애애한 이들이지만 농구장 밖은 풍전등화다. 21일까지 이 팀 인수를 희망하는 구단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이들은 특별 드래프트를 통해 나머지 9개 구단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김강선(36)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데뷔 이후 줄곧 한 팀에서만 뛰었고, 이제 팀을 옮겨 적응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며 “2020년 태어난 아들에게 아빠가 농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소망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고양=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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