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공탁금’ 줄줄이 불수리…법적 오류까지 ‘졸속’ 천지
전주지법엔 강제동원 사망자 대상 엉터리 공탁도
법원이 5일 정부가 제3자 변제를 거부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을 대상으로 한 공탁에 잇따라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서둘러 강제동원 보상 문제를 끝내려 했던 정부로서는 계획 차질은 물론 ‘졸속 공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광주지방법원은 이날 “정부가 제기한 양금덕(94) 할머니 배상금 공탁 ‘불수리’에 대한 이의신청에 공탁관이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전날 ‘양 할머니 쪽이 제3자 변제를 받을 의사가 없다는 뜻을 표시했다’며 광주지법이 공탁 불수리 결정을 내린 데 불복해 이의신청을 낸 바 있다.
수원지방법원도 강제동원 피해자인 고 정창희 할아버지와 고 박해옥 할머니 유족 2명을 대상으로 낸 공탁 신청에 대해 “유족이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대한 명백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면서 불수리 결정을 했다. 광주지법 판단과 마찬가지로 수원지법 또한 정부가 신청한 공탁이 민법 제469조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법 제469조는 당사자가 거부할 때는 제3자가 변제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공탁이란 채권자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 채무자 쪽이 금전 등을 법원에 맡겨 채무를 면제받는 제도다.
법원이 잇달아 공탁 불수리 결정을 내림에 따라 속전속결로 강제동원 문제를 끝내려던 정부의 계획은 틀어지게 됐다.
공탁과 제3자 해법의 적법성을 따지는 장기 법정 다툼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정부는 2018년 대법원에서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15명의 판결금과 지연 이자를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일본 가해 기업 대신 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지급하도록 하는 제3자 변제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발표 뒤 15명 가운데 11명이 이를 수용했지만,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 등 생존 피해자 2명과 고 정창희 할아버지와 박해옥 할머니의 유족 등 원고 4명은 일본 가해 기업이 배상에 참여해야 한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향후 양 할머니 등에 대한 공탁 불수리 결정 유·무효는 공탁관이 아닌 판사의 판단을 받게 됐다. 공탁법 제13조에는 “공탁관은 이의신청이 이유가 없다고 인정하면, 이의신청을 받은 날부터 5일 이내에 이의신청서에 의견을 첨부해 관할 지방법원에 송부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날 양 할머니 관련 공탁 불수리 건은 광주지법 민사 44부로 송부됐다.
정부로서는 법원이 공탁 불수리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장기전’을 피하기 어렵다. 재판은 3심으로 진행된다. 법원이 공탁 불수리가 유효하다고 판단할 경우 정부는 항고할 수 있으나, 결과가 불투명하다. 공탁 불수리 무효 판단이 나더라도, ‘행정 절차’가 아닌 ‘본안’에 대한 장기 법정 다툼이 기다리고 있다. 피해자들이 공탁과 제3자 변제 자체에 대한 무효 소송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졸속, 부실 공탁을 강행했다는 비판도 자초했다. 이날 전주지법은 고 박해옥 할머니를 대상으로 한 정부 공탁에 대해 불수리 결정을 내렸는데, 정부가 법원의 보정 권고를 이행하지 않은 점이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법원은 정부가 고인인 박 할머니가 민법상 공탁 상속인이 될 수 없음에도 그를 공탁 상속인으로 지정하는 오류를 범했다며 보정 권고기한(지난 4일)까지 이를 시정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불수리 결정이 나도록 방치한 셈이다. 정부는 유족의 거주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일부 공탁서를 관할 법원이 아닌 엉뚱한 법원에 보내기도 했다. 또다른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인 이춘식(99) 할아버지에 대한 공탁은 서류미비 탓에 반려된 상태다.
강제동원 피해자 법률 대리인인 이상갑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런 종류의 실수는 법조인이 하는 경우에는 거의 발생하지 않고, 일반 개인이 할 때 간혹 일어난다. 정부는 법률 전문가들이 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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