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토링] 한수 앞을 보는 것도 자질이다

이남석 발행인 2023. 7. 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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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열정·소통의 리더 이순신㉕
이순신 자질 드러난 당항포해전
적군 유인작전 펴 전투 승리
왜적 함대 26척 중 25척 침몰

이순신은 '견내량'을 지나 당항포 앞바다에 도착했다. 거제에 있던 왜군이 당항포로 이동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였다. 장수들은 "진격하자"는 의견을 냈다. 순신은 신중했다. 당항포의 초입이 1리조차 안 될 정도로 좁은 게 맘에 걸렸다. 순신은 '유인작전'을 지시했고, 끝내 승리했다. 순신이 왜 명망을 얻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편에선 순신의 빼어난 자질을 옛 기록 그대로 전해봤다.

지도자라면 한수 앞을 볼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6월 5일 아침. 순신이 이끄는 조선삼도연합함대가 정박해 있는 통영지역 착량에 거제 지역에 살고 있다는 주민들이 작은 배로 짙은 안개를 헤치고 찾아왔다. 그들은 이순신에게 "당포 바다에 있던 왜적선이 거제에 있다가 고성 당항포로 이동했소"라며 소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돌아갔다.

순신은 곧바로 함대를 지휘하여 견내량(거제대교의 아래쪽에 있는 좁은 해협)을 지나 당항포 앞바다에 도착했다. 당항포 앞바다에서부터가 문제다. 당항포구에 이르는 초입은 바다의 폭이 넓어야 1리(300m)도 안 되는 좁은 해협이다. 막다른 곳에 소소포가 있어 사람들은 이 지역을 '소소강'이라고 일컬을 정도다. 초입을 지나 막상 당항포에 이르면 최대폭은 4.5리(1.8㎞) 정도로 넓어져 해전을 벌일 수는 있는 형편은 된다.

순신은 이런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 유인작전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자칫 좁은 해협을 돌파하다 후방에서 적선이 나타나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왜적은 해안에 가깝게 위치해 있어서 아군이 바로 전투에 돌입하면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갈 가능성도 충분했다.

순신은 전선 3척을 보내 적선이 몇척인지 확인도 하고 지리도 살펴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만약 적선이 공격해오면 응전하지 말고 유인만 하라고 덧붙였다.

작전은 치밀했다. 우선 당항포 입구쪽에 판옥선 4척을 비롯, 여러 척의 협선과 포작선을 배치했다. 후방 경계 임무를 맡다가 유인작전에 성공하면 공격에 가세하도록 지시했다. 이억기의 전라우수영 함대는 당항포구 쪽에서 매복하고, 순신의 함대는 선봉을 맡기로 했다. 정탐하러 들어간 함선에서 쏜 신호탄에 맞춰 조선의 연합함대는 각각의 임무에 따라 당항포로 진입했다.

선봉 함대가 소소포에 다다르니 왜군 대선 9척, 중선 4척, 소선 13척 등 모두 26척이 언덕에 가깝게 닻을 내리고 있는 게 보였다. 당항포 해협에서 적선들은 조선함대를 발견하고 일제히 조총을 쐈다. 탄환이 우박처럼 쏟아지며 조선함대로 날아왔다.

순신은 이미 명령을 전달한 바 있다. "적이 싸우다가 힘이 빠지면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칠 염려가 있다. 그리 된다면 적의 병력을 많이 섬멸치 못할 것이니, 우리는 퇴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면 적은 승세를 타서 우리 뒤를 추격할 것이다. 적을 큰 바다로 유인해 협공으로 전멸시켜야 한다."

전투가 무르익을 때쯤, 순신의 선봉함대는 짐짓 밀리는 척하다가 뱃머리를 180도 돌려 당항포 해협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적의 대장선은 검은색 쌍돛을 높이 달고 추격에 나섰다.

사실 이 장면이 추격인지, 불리한 지형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것인지는 의견과 분석이 서로 다르긴 하다. 어찌 됐든 왜적 함선들은 삼각대형을 이뤄 맹렬한 속도로 쫓아오며 이억기의 전라우수영 함대가 매복한 지점을 지나쳤다.

빠른 속도로 넓은 바다 쪽으로 진출한 왜군 함대의 장졸들은 어쩐지 뒷골이 서늘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조선의 함대가 따라오고 있는 게 아닌가. 조선의 매복 함선들을 보고 적들의 동공은 자두 알만큼이나 커졌다. 이때 갑자기 징소리가 나자 이번엔 화들짝 놀랐다.

앞을 보니 달아나던 조선의 함선들이 뱃머리를 돌려 옆구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편 듯했다. 다시 뒤를 돌아다 보니 따라오던 조선함대도 같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아뿔싸, 영락없이 물고기 밥 신세로구나"라고 생각하는 찰나 양쪽에서 포탄이 날아왔다. 여기에 괴상한 형체의 함선 2척이 자신들의 선두 함선과 대장선을 들이받아 구멍을 내버렸다. 곧이어 거북선에서 발사된 대포와 화전에 대장선의 누각이 박살 났다.

사령관이 화살을 맞아 바다에 떨어져 죽는 모습을 본 왜군 함대는 전투를 포기하고 곧바로 달아나려고 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1592년 6월 5일 당항포해전에서 조선의 연합함대는 왜적 함대 26척 중 25척을 침몰시켰다. 조선의 바다에서는 연이은 승전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지만, 내륙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통한 일이 연속으로 터졌다.

6월 5일부터 이틀간 경기도 용인에서는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이른바 '용인전투'다. 이 전투에 앞서 전라감사 이광, 충청감사 윤국형, 경상감사 김수는 5만이 넘는 이른바 '3도 연합군'을 결성했다. 이들은 충주에서 왜군을 방어할 요량으로 일단 용인에 집결했다.

이순신의 지시는 아래 군졸들에게 신뢰를 줄 만큼 완벽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런데 용인 북두문北斗門 산 위에서 왜군이 성채를 쌓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광주목사 권율이 이렇게 진언했다. "적병은 이미 험한 산성을 쌓고 웅거했습니다. 우리 군사가 높은 곳을 향해 공격함이 불리하니 비록 적의 규모가 작더라도 지금 적과 싸우지 말고 한강을 건너가 임진강의 요충지를 지킵시다."

이광 등 3도의 감사들은 군사가 많은 것만 믿고 자만심에 빠져 권율의 진언을 듣지 않았다. 결과는 비참했다. 적게는 1500명, 많아야 1700명 규모에 불과한 왜군의 유인술에 말려 5만의 조선 군사력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3도 감사들과 군관급 종사관들은 말에 채찍질하며 달아났다. 이광은 전주로, 윤국형은 공주로, 김수는 성주로 줄행랑치고 말았다. 비록 일신의 안위는 챙겼지만 훗날의 기록이 얼마나 무서운 줄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장수를 잃은 군사들 역시 군량과 병기를 내버리고 흩어졌다. 동복현감 황진과 광주목사 권율은 이 전장에서 죽음을 맞았다.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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