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수 앵무새' 증권사 리포트에 금감원 "경고"…업계는 '난색'(종합)

업계 "매도 썼다간 '죽을 각오' 분위기…비중 맞추라 강요 어려워"
금감원, "불법 영업 CEO에게 책임"…업계 "내부통제 강화 동의"

금융감독원은 5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27개 국내외 증권사 CEO등과 증권사 영업관행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금융감독원 제공) 2023.07.05

(서울=뉴스1) 강은성 박승희 기자 = 금융감독원이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최근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리서치센터'의 개혁을 주문했다. 온통 '매수'일색인 리서치센터의 리포트 신뢰도가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데다, 최근 애널리스트의 선행매매로 투자자들의 불신이 높아진 상황에서 신뢰 회복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는 난색을 표했다. 애널리스트에게 매수와 매도의 균형을 맞추라고 회사가 관여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아직 공매도 전면 재개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애널리스트가 섣불리 '매도' 의견을 냈다간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크다는 우려도 내놨다.

5일 금융감독원은 함용일 자본시장부원장 주재로 27개 국내외 증권사 CEO 등과 증권사 영업관행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우선 증권업계 리서치센터 개선에 대한 부분이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함 부원장은 간담회에서 "올바른 리서치문화 정착을 위한 증권업계의 일치된 문제인식과 자정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다수의 증권사가 그간의 관행에 대한 자성없이, 국내 시장환경만 탓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기관 등을 대상으로 투자의견을 제시하는 '종목리포트'를 발간하고 있지만 신뢰성은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투자의견으로 '매수'만 제시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발생한 애널리스트의 불법 선행매매 사건으로 인해 리서치보고서에 대한 신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함 부원장은 보고서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 금융투자협회를 중심으로 증권업계 공동의 적극적인 변화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증권업계도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참석자들은 "이제라도 잘못된 리서치 관행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면서 "반복되는 일부 애널리스트의 불법행위가 근절될 수 있도록 내부통제 강화 등 자정노력을 강화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크게 공감한다"는 의견을 냈다.

다만 국내 종목리포트가 '매수 일색'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국내시장의 높은 매수 포지션 비중, 리서치보고서 무료 제공 등 시장환경이 리서치 관행에 영향을 미친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애널리스트 개인이 매도 의견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실제 앞서 에코프로에 대해 매도 의견 및 비중축소 등의 의견을 제시한 애널리스트는 해당 종목 투자자들에게 '조리돌림' 수준의 비난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에 해당 증권사와 애널리스트의 조사를 요청하는 민원이 다수 접수돼 담당자가 금감원의 조사를 받는 일까지 있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증권사 CEO는 "매도 의견을 내면 주식을 가진 분들이 '맞다'라고 하겠느냐"며 "애널리스트에게 매도를 왜 쓰지 않느냐고 관여하면 잔다르크처럼 죽을 각오를 하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회사는 매도 매수 비중을 맞추라고 (관여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대기업들이 '실적이 이렇게 나올 것'이라며 가이던스를 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가이던스를 내는 기업이 극히 일부"라며 "애널리스트는 가이던스를 알려고 노력하다 보니 정보가 없어지다 보니 기업들과 원수지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미국 등 해외 시장의 경우 종목리포트가 대부분 유료로 제공되며 애널리스트의 실명 등은 공개되지 않고 '하우스뷰'(증권사 제시 의견)로만 제공된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런 미국에서조차 리포트 96%가 매도 의견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간담회 자리에서는 매수 매도 의견 비중 조정과 관련한 최종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다만 금감원은 증권업권과 협력해 애널리스트의 성과평가, 예산배분, 공시방식 개선 및 독립리서치 제도도입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리서치보고서가 투자자에게 균형잡힌 투자방향을 제시하고 자본시장의 중요한 인프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증권사의 영업관행 개선에 대한 의견도 나눴다. 금감원은 '증권사의 불법적 영업행위는 결국 CEO의 책임'이라며 내부통제를 강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랩‧신탁 관련 불건전 영업관행에 대해서도 CEO 책임을 엄중하게 묻겠다고 강조했다.

함 부원장은 더 이상 고객자산 관리‧운용과 관련한 위법행위를 실무자의 일탈이나 불가피한 영업관행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면서 "컴플라이언스, 리스크관리, 감사부서 등 어느 부서도 위법행위를 거르지 못했다면 이는 전사적인 내부통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써, 내부통제의 최종 책임자인 최고 경영진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불건전 영업관행은 'CEO의 관심과 책임의 영역'"이라면서 "감독당국은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영업관행에 대해서는 엄정히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관행에 대해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간담회 자리에선 관리 필요성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CEO는 "업계가 돈을 덜 벌더라도 안 다쳐야 할 것"이라며 "그건 (당국과 의견이) 비슷하다"고 했다.

seungh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