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범죄자가 된다

한겨레 2023. 7. 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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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김정희원 |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이번에도 역시 윤석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 그의 뜬금없는 ‘명령’이 교육 현장에 가져온 후폭풍을 우리는 지금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그런데 그 파장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듯하다. 윤 대통령이 “교육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카르텔이냐”고 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표적 감사와 수사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이권 카르텔”로 낙인찍힌 사교육 업계는 잠재적 범죄 집단이 되었다. 국세청은 입시학원과 ‘일타강사’를 상대로 전방위 세무조사를 진행 중이다. 교육부는 ‘사교육 카르텔 범정부 대응협의회’를 구성했는데 여기에 합류한 기관은 경찰청과 공정거래위원회다. 이들은 사교육 카르텔 신고센터를 개설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의심 사례”를 신고하도록 했으며, 불시에 학원 현장 점검을 실시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제 탈세나 비리 사례가 적발되면 “사교육 카르텔”은 기정사실화될 것이다.

이런 흐름은 현 정권에서 낯익은 구도다. 윤 대통령이 그동안 연구개발이 “나눠먹기, 갈라먹기”였다고 주장하자 감사원은 곧장 한국연구재단을 비롯한 11개 연구기관 감사에 착수했다. 연구 참여 인력을 중심으로 누가 연구비를 “독식”했는지 보겠다는 것이다. 역시나 보수언론은 이를 “연구비 카르텔”이라고 보도했다. 어떤 연구비 유용 사례가 나오든 그 결과를 활용해 연구진 전체를 부패 세력으로 몰아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 폭력 연구에 평생을 바친 학자이자 활동가 앤절라 데이비스는 특정 집단을 선제적으로 범죄화함으로써, 그 집단으로부터 범죄자를 기하급수적으로 ‘양산’하는 국가적 전략에 주목해왔다. 일단 국가가 예상 범죄 집단을 특정한 후 수사기관을 동원한다. 해당 집단은 초(hyper)감시, 불심검문과 수색, 구속영장 발부, 과도한 수사의 대상이 된다. 유독 이 집단에 수사 인력이 집중되는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듯, 자연히 해당 집단에서 ‘범죄자’가 급증하면서 사후적으로 이들이 “위협 세력”이었음이 증명된다. 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림이 아닌가?

물론 어떤 개인은 실제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구속된다. 그러나 때때로 국가는 정권의 필요에 따라 어떤 행위를 무리해서 범죄로 만들거나, 어떤 이를 무리해서 범죄자로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교육 현장은 정말로 카르텔의 온상일까. 한국 사회의 부패 세력은 모두 시민단체에 몰려 있나. 경찰은 겨우 200일 만에 1484명을 검찰에 송치했다며 ‘건폭 특별단속 성과’를 발표했는데, 범죄자들은 특히 건설노동조합에 많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단속 성과의 3분의 2가 월례비 관련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최근 대법원은 월례비가 합법적 임금의 성격을 지닌다고 판결했으나, 경찰이 만든 죄명은 ‘금품 갈취’였다. 경찰은 오히려 특별단속을 연장한다고 하니, 결국 “범죄자”는 계속 양산될 것이다. 정권이 찍은 낙인을 현실화하기 위해, 대통령이 내뱉은 말을 지켜주어야 해서, 누군가는 그렇게 범죄자가 된다.

처벌과 감금으로 사회가 진보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랜 역사로 증명된 사실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다양한 역량을 펼칠 기회를 박탈하고 사회를 위축시킨다. 처벌이 제1의 통치원리인 국가에서 살아가는 국민은 우울하고 불행하며 두려움에 떤다. 교육 현장에서는 수능 출제위원을 모두가 기피한다는 말이 나온다. 만약 당신이 출제위원이라면 학생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창의적인 문제를 낼 것인가, 아니면 “킬러 문항”으로 찍히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며 트집 잡히지 않을 문제를 낼 것인가. 이런 현실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어떤 도움을 주며, 교육 불평등 해소에 어떤 기여를 할까? 갑작스레 수사에 동원된 인력과 자원을 학교 환경 개선과 빈곤층 학업 지원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대통령의 말 속에는 더 많은 범죄자 색출을 요구하는 명령만 가득하다. 내일에 대한 비전은 없고, 오늘 마주하는 공포만 있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는 오직 위축과 퇴행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두려움 없이 누구나 잠재력을 펼칠 수 있는 사회, 사후적 처벌이 아니라 사전적 안내와 지원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사회, 장기적 청사진이 있는 사회를 원한다.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이런 그림이 들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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