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형의 여담] 폭넓은 교육은 얼마나 중요한가
[김민형의 여담]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몇 년 전 머튼 칼리지에서 역사 전공 학생들과 수학과 역사의 관계를 논하다가 톨스토이 소설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역사의 미적분학’ 이론을 설명해 주었다. 소설 곳곳에 표현된 저자의 역사철학 중 하나로, 큰 사건과 인물 중심의 개념적 틀을 벗어나 각 순간 사회 구성 요소들의 미세 변화를 추적하고 그들의 효과를 연속적으로 더해준 적분을 통해서만 역사의 양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저자의 추측이 상당히 길게 설명돼 있다. 이론의 설득력 문제를 떠나서 톨스토이가 미적분학의 기본 개념들을 꽤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날 놀란 것은 학생 셋 중 둘이 <전쟁과 평화>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동아시아 국가에 전해져서 아직도 인기 있는 유럽 문화의 산물 중 유럽 자체에서는 잊힌 것들이 많다. 가령 우리나라에서 좋아하는 ‘어린이 명작’으로 유럽에서 찾기 어려운 것들도 많고 영어, 불어권에서는 전혀 모르는 독일 문학이 한국에서 공부되는 사례도 종종 있다. 다른 방향으로 선종 불교의 개념들을 일반인이 들어본 일은 미국이 한국보다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과 평화> 정도의 소설이 잊힌다는 것은 다소 충격이었다.
사실은 내가 미국과 영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교양’이라고 할 만한 지식을 폄하하는 태도를 대학 내에서 마주친 일이 적지 않다. 필요 없는 지식을 간직하는 것은 필요 없는 자동차를 수집하는 것과 같다는 의견을 어떤 수학교육 전문가로부터 듣기도 하고 음악의 역사나 이론의 공부는 소질 없는 연주가에게나 중요하다는 음악 대가의 주장도 들어 봤다. 수학의 대가에게서 수학에 대한 박식조차 창조적인 일에 방해가 된다는 태도를 만난 일도 있다. 세상의 깊고 넓은 이해로부터 오는 즐거움의 관점에서는 이런 의견들을 무시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전문 교육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폭넓은 교육, 혹은 교양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가’는 중대한 질문이다. 그에 대한 답을 잘 모르겠다. 젊은 시절에는 폭넓은 지식을 좋아하던 내가 나이 들면서 ‘지적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의식할 때가 많다. 특히 유럽 학계에서는 대체로 구체적인 특화 교육이 지배적인 데도 창조적 활동의 전통이 탄탄하게 이어지는 현상이 생각을 재정리하게 만든다.
최근에 스코틀랜드의 자연 철학자 다아시 톰슨에 대해서 읽으면서 특히 마음이 흔들렸다. 그의 연구가 ‘교양의 방해’를 받았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톰슨은 영향력 있는 과학서 <성장과 형태>의 저자이다. 이 책은 개정판과 축소판을 포함해서 1917년에 발행된 이후로 한 번도 절판되지 않은 세기의 베스트셀러이다. 수학적 관점에서 기술한 자연 철학서이지만 고상한 문체와 아름다운 삽화에 힘입어 여러 분야 학자와 일반 독자들에게도 사랑받는 책이다. 특히 톰슨의 글솜씨는 높이 평가돼서 <성장과 형태>는 과학서 중 최고 문학 작품이라는 칭찬도 따라 다닌다. 무엇보다도 생명 과학에서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고 수리 생물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수학자로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의 결점 또한 너무나 분명하다.
톰슨은 생물학자인 동시에 고전학자였다. 19세기에 교육받은 영국 신사답게 그는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통달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학 책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성장과 형태>에서도 고대 작가와 유럽의 철학과 문학이 수없이 인용되고 그의 자연 철학적 주장은 거의 항상 고전 문구와 함께 표현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의 수학조차 고대 그리스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가 책에 가득하다. 19세기 유럽 학계의 전반적인 약점 중 하나가 고전의 숭배였다. 톰슨도 그리스 기하학을 수학의 최고봉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흥미로운 관찰과 뛰어난 직관에도 불구하고 결국 구체적인 이론을 스스로 창출하지 못한 채 훌륭하면서도 모호한 영감만 후대에 남겼다. 즉, 회전 곡면이나 아르키메데스 와선 같은 고전 기하에 집착한 나머지 그 당시 이미 개발돼 있던 강력한 함수론의 도구들을 외면한 것이다. 수학적 방법론의 전반적인 중요성을 옳게 간파한 학자가 자신을 제한하는 세계관 때문에 개념적 헛걸음을 하는 모습이 책 곳곳에 나타난다.
물론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교양 그 자체가 시대에 따라서 (때로는 빨리) 진화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과 문학을 알면 유식하다고 여겨지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고, 동양에서도 사서삼경의 중요성은 쇠퇴했다. 그럼에도 어느 시대에나 지적 능력의 효율적 개발은 중요한 관건이어서 전문성과 교양의 적당한 균형은 끊임없는 질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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