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성 홈리스였다 [6411의 목소리]
[6411의 목소리]6411의 목소리
사계절(가명) | 홈리스 행동 아랫마을 야학 재학 중
나는 지금 한 달에 74만 원 정도 기초수급을 받고 있다. 비록 넉넉지 않은 삶을 살지만 지나왔던 시간을 돌아보니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돈을 벌어 떳떳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달에 아랫마을 활동가에게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일이 힘들어도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느껴보고 싶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가셨다. 술만 먹으면 욕하고 두들겨 패는 아빠의 폭력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같이 살게 된 할머니는 눈만 뜨면 엄마 욕을 했다.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었다. 날마다 할머니 말을 안 듣고 싸우고 말썽을 부렸다. 어느날 아버지가 나를 정신병원에 보냈다.
정신병원에서 6개월을 보내고 나온 뒤, 중학교를 들어갔다. 적응하지 못하고 퇴학을 당했다. 늘 구박만 하는 할머니가 보기 싫어 집을 나왔다. 1992년 열여섯 살 되던 해였다. 서울역 가는 기차를 탔다.
서울역에서 전철을 타고 아무 곳이나 내렸는데 부천역이었다. 막막했다. 잠을 잘 곳이 필요해 지나가는 어떤 아저씨에게 도와 달라고 했다. 그 아저씨는 나에게 몇 가지를 묻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가출한 사람들 보호해 주는 시설 같았다. 거기서 나흘 동안 머물렀다. 그곳에서 다시 인천 산곡동에 있는 협성원이라는 곳으로 날 보냈다. 거긴 소년원 비슷한 곳이었다. 협성원에서 2년9개월 살다 열여덟 살에 풀려났다.
열아홉 살에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와 안산으로 가서 같이 살았다. 그 남자는 생활비를 갖다 주고 날 먹여 살리긴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꾸 술을 먹으면 나를 때리고 구박했다. 어느날 옷 몇 가지를 가지고 뛰쳐나왔다.
1998년 2월23일, 다시 서울역으로 갔다. 서울역이 낯설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 남자는 자기가 사는 서소문 공원을 가자고 했다. 무작정 따라갔다. 공원에 도착하니 노숙인들이 천막을 치고 살고 있었다. 군데군데 텐트가 쳐 있는 모습이 꼭 피난민 같았다. 노숙자가 됐다. 살다 보니 나름대로 적응이 됐다. 노숙자들 하나하나 다 사연이 있었다. 잘살아보려고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걱정돼 나온 사람들이었다.
하루는 다시 서울역을 갔다. 그때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오는 어떤 남자가 무슨 고민이 있냐고 말을 걸어왔다. 내가 서소문 공원에서 나오고 싶은데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남자가 자기는 쪽방에서 6개월 된 아기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 나 보고 아기 봐 주면서 같이 있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 남자는 아기 엄마가 도망갔다고, 나보고 아기만 봐 주면 밥을 해 주겠다고 애원까지 했다. 그래서 어차피 갈 데도 없는데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날부터 그 남자가 해 주는 밥을 먹으며 같이 살았다. 그러다 6개월 지나 그 남자가 월세를 내지 못했는지 쪽방에서 쫓겨나오게 됐다. 그 남자와 헤어져 거처를 떠돌며 살았다.
어느 날 서울역에서 홈리스 활동가 김선미씨를 만났다. 그가 여기저기 알아봐 줘 정부에서 지원하는 방을 얻고 기초수급도 받게 됐다. 2008년에 드디어 노숙과 쪽방에서 벗어났다.
최근에는 홈리스 야학을 알게 됐다. 나는 늦은 나이에 진형 중고등학교(2년제 학력인정학교)를 졸업하고 바리스타 2종 자격증도 땄는데 홈리스 행동 아랫마을 야학에 가서 뭐 한 가지라도 배울 수 있겠다 생각했다. 야학에 다니면서 나 자신이 당당해지는 것 같고 조금씩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 말 한마디라도 조심조심하게 되고 행동도 험악하게 굴지 않으려고 하니까 조금씩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서 ‘날라리’ 님이 가르치는 글쓰기 반에 들어가서 글쓰기 공부도 했다. 그간 하지 못했던 말을 글로 쓰고 싶었다. 노트와 볼펜을 사서 하루에 두세장씩, 처음 서울역에 와서 살아가던 과정과 힘들었던 얘기를 한 줄 한 줄 써서 핸드폰으로 찍어 날라리 님께 보냈다.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한 자 한 자 쓸 때마다 어떨 때는 눈물이 나고 어떨 때는 ‘왜 내가 바보같이 살아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수요일마다 홈리스 행동 신입 활동가 교육을 받고 금요일 저녁 인권지킴이라는 활동을 시작했다. 남대문, 서울역, 그리고 용산역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한 군데씩 돌며 다른 활동가들이 노숙인과 상담하는 걸 보고 들었다.
나는 지금 한 달 74만 원 정도 기초수급을 받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간질을 앓고 있는데 장애 수당까지 80만 원을 받는다. 비록 넉넉지 않은 삶을 살지만 지나왔던 시간을 돌아보니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돈을 벌어 떳떳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달에 아랫마을 활동가에게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아쉽게도 기다린 보람이 없었다. 활동가님은 좀 더 기다려보자며 힘내라고 했다. 일이 힘들어도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느껴보고 싶다. 다시 예전의 노숙자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일하며 살고 싶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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