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해봐서 아는데’…그런 교육개혁은 그만!
[왜냐면] 이성대 | 진보교육연구소 이사·전 구암고 교사
정부가 교육, 노동, 연금의 3대 개혁을 내세울 때부터 나는 제발 교육에 큰 사고나 일어나지 않기만 바랐다. 그러나 불길한 예측은 기어이 비켜 가지를 않았다. 지금 우리 교육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또다시 큰 상처를 입고 있다.
지금 고3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그래서 무얼 어떻게 할 건데’를 간절하게 묻고 있다. 수능을 불과 4개월 남겨 놓은 시점에서 출제 기준이 ‘교육 과정 내에서’인지, ‘학교에서 배운 범위 내에서’인지,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이 출제되지 않는다면 ‘준 킬러 문항’은 오히려 더 많이 출제되는 건 아닌지, 예년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지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 온 나라를 들었다 놓은 이번 사달은 우리 교육이 딛고 선 기반, 철학의 허약함을 다시 한 번 그대로 드러냈다. 제대로 된 교육개혁을 위한 토론마저도 기피하고 싶게 만드는 피로감만 증폭시키고 말았다. 경쟁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뿐, 결코 교육이 될 수 없다. 경제 논리와 교육 논리는 다르고 또, 달라야만 한다. 정부는 또다시 일제고사를 불러내려는 것 같은데 교실에 경쟁을 더 세게 불러들일수록 교육은 교육 아닌 게 되고 극소수의 성공자와 절대다수의 실패자를 양산할 뿐이다. 공교육은 한 사회의 미래를 내다보는 철학에 바탕을 두고 설계해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인력 양성이 아니라 ‘인간’을 기르는 공적 활동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갈등 과잉 상황이고 이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사회의 신뢰 자산과 정치력이 극도로 취약해져 있다. 교육은 미래 세대에게 민주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극소수의 유능한(?) 인재만 염두에 두고 절대다수를 돌보지 않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의 젊은이도 소중한 인구 절벽 상황이 아닌가?
이번 사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안타까운 건 공교육의 존재 이유에는 아무런 눈길도 주지 않고 사교육과 다를 바 없게 된 상황을 당연하다는 듯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수학능력시험’은 지금이라도 원래 취지대로 ‘대입 자격고사’가 돼야 한다. 공교육은 경쟁과 선택형 시험문제로는 달성할 수 없는, 심오한 교육 목표와 교육 과정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 교육의 오늘과 같은 난맥상의 뿌리는 교육 철학의 허약함에 있다는 것을 각성해야 한다.
다음으로 천문학적 사교육 비용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6월26일치 <한겨레>는 통계청 조사를 인용해 ‘올해 1분기 상위 소득 20% 가구의 월평균 학원비가 42만9천원으로 전년에 비해 15.9% 늘었다’라고 보도했다. 사교육비는 이제 임금 인상 압박을 넘어서, 노후 빈곤을 초래하고, 젊은이들이 자녀 양육비 부담으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만들어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가 됐다.또한 사교육은 온 나라 학생들을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습 노동에 내모는 심각한 인권 유린이다.한마디로 사교육 문제는 부모의 지출 능력 차이가 대입 결과를 좌우하는 불공정 문제일뿐더러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중증 중독 현상이다. 원인은 단순히 ‘킬러 문항’이 출제되느냐 아니냐 정도가 아니라 대학의 서열화와 극심한 입시 경쟁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에 따른 처방은 분명하고도 간단하다. 수능 시험을 본래 취지대로 대학 입학 자격고사로 전환해 대학 입시 경쟁을 획기적으로 완화하는 것이다. 대학은 말 그대로 학업 능력이 검증된 학생을 차별 없이 받아들여 교육을 통해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대학 통합 네트워크라고 하든, 대학 서열 타파라고 하든 지난하겠지만 그 길밖에는 길이 없다.
세종은 농업을 ‘개혁’해보려고 <농사직설>을 편찬할 때 나이 많은 농부에게 물어보라고 했다고 한다. 전임 대통령 한 분이 무슨 일이든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면서 일을 더 어렵게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내가 수사해 봐서 아는데’로 버전만 바뀌어 되풀이되고 있다. 이제라도 교육은 교육자들에게 물어보기를 부탁드린다. 이제라도 이주호 장관처럼 경제학을 전공한 인사에게 교육을 맡기는 일은 그만뒀으면 한다.교육에 대한 철학부터 재점검할 생각이 없다면, 적어도 교육 사회학의 관점에서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고 거대한지, 얼마나 지난한 문제인지를 직시하고 필사즉생의 각오로 임할 생각이 아니라면 교육개혁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이번 ‘킬러 문항’ 소동은 제발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을 더 이상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 지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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