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처럼 짜릿했던 조성진의 '메탈릭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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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창연한 헨델의 멜로디가 한순간 사라졌다.
지난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조성진 리사이틀은 음악 애호가들이 그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준 무대였다.
조성진은 폭넓고 세밀한 '다이내믹'(음량을 통해 다양한 정서를 표현하는 것)으로 무대를 쥐락펴락했다.
조성진이 택한 다음 곡은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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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브람스 피아노 소품 등 연주
현대음악 넣어 긴장감 극대화
"한편의 연극 본 것 같은 감동"
고색창연한 헨델의 멜로디가 한순간 사라졌다. 적막. 뒤이은 날카로운 불협화음. 다시 폭풍처럼 쏟아지는 소리들.
러시아 현대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92)의 대표작 ‘샤콘느’(변주곡 형태를 띠는 기악 장르나 형식)를 조성진(29)은 ‘스릴러 영화’로 만들었다. 바로크음악에서 현대음악으로 순식간에 전환한 대목이나 곡 말미에 나온 순간적인 정적이 그랬다.
지난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조성진 리사이틀은 음악 애호가들이 그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준 무대였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씨에도 공연장엔 빈자리가 없었고, 프로그램북 1800여 개도 동났다. 조성진은 폭넓고 세밀한 ‘다이내믹’(음량을 통해 다양한 정서를 표현하는 것)으로 무대를 쥐락펴락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음색을 따라가는 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기획력부터 남달랐다. 대중적인 레퍼토리가 아니었지만, 영리하게 구성한 덕분에 관객은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1부 헨델의 피아노 소품과 브람스의 ‘헨델 변주곡과 푸가’ 사이에 구바이둘리나의 곡을 넣은 게 그런 대목이다. 쇼팽, 드뷔시 등 주로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음악을 선보여온 조성진이 이렇게 파격적이고 ‘메탈릭’한 사운드를 들려줄 거라고 예상한 관객이 얼마나 됐을까.
조성진이 택한 다음 곡은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첫 곡인 헨델의 피아노 소품과 자연스럽게 연결하려는 구성이었다. 헨델의 곡을 인용한 이 곡은 장식적이고 직관적인 헨델의 음악이 브람스 특유의 풍성한 낭만주의 음악과 조우하며 장대하게 발전하는 게 매력적인 작품이다. 테마와 25개의 변주, 푸가로 이어지는 대작이 조성진을 만나자 한편의 연극이 됐다. 감미로운 캐릭터, 익살맞은 배우, 비장한 주인공 등 수십 명이 튀어나왔다가 들어갔다.
2부에서는 브람스의 ‘피아노 소품 작품번호 76번’ 중 네 개의 곡을 연주했다. 브람스가 40대에 작곡한 이 곡은 10여 년 뒤 조성진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대미는 슈만의 ‘교향악적 연습곡’이 장식했다. 앙코르곡으로 고른 라벨의 ‘대양 위의 조각배’에선 극도의 디미누엔도(점점 여리게)를 들려줬다. 신기하게도 들릴 듯 말 듯 한 그 여린 소리가 한음도 빠지지 않고 객석에 전달됐다.
그는 대부분 한 곡을 마친 뒤 바로 다음 곡을 연주했다. 성격이 전혀 다른 곡인데도 ‘예열’이 필요 없었다. 광활한 스펙트럼을 펼치면서도 균형 감각을 잃지 않았다. 그는 마치 무용수처럼 몸을 많이 썼다. 양손이 넓어지며 고음과 저음의 간격이 벌어질 때는 팔꿈치를 살짝 위로 들어 대조를 극대화했다. 종종 몸의 반동을 이용해 소리의 색을 강화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왼쪽 발은 무게 중심에 따라 앞뒤, 양옆으로 이동하며 음색을 뒷받침했다. 구바이둘리나의 마지막 음은 마치 현악기의 비브라토(음을 떨며 연주)처럼 건반을 누른 채 손가락을 살짝 떠는 식으로 잔향을 남겼다.
온몸과 마음을 불사른 조성진에게 2500여 명의 관중은 터질 듯한 환호를 보냈다. 그중에는 조성진의 멘토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도 있었다. 멘토를 감싸 안은 조성진의 얼굴에는 그가 평소 연주에 만족했을 때 보여주는 미소가 가득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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