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차도 팔았다"… 4기 폐암 아내 둔 가장, 울먹이며 나선 이유
건강보험 재정 지속성도 같이 확보해야… 두 마리 토끼 잡는 법 토론
"결국 누가, 얼마나 돈을 더 낼 것이냐의 문제"
"4주 약값이 600만원입니다. 차도 팔고, 집도 저당 잡혀서 3억원 대출받고 약값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4기 폐암 환자 아내를 둔 임성춘씨는 투병 과정에서 겪은 재정적 부담을 이렇게 표현했다. 국회에 수없이 들락거리고, 청와대 청원으로 직접 하소연까지 했다는 부분에서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4년간 아들·딸 결혼자금까지 동원해 5억원을 썼다는 임성춘씨는 "국민을 살리기 위해 폐암 치료제의 급여화를 빨리해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KAMJ)가 주최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하는 '중증·희귀질환자 중심 건강보험재정 개편 방안' 심포지엄이 5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은 중증·희귀질환 환자의 신약 접근성은 높이면서도,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자리에는 임성춘씨 사례처럼 중증·희귀질환자를 가족으로 뒀거나 실제로 앓은 사람이 나와 투병 이야기를 소개했다.
'척수성근위축증'(SMA)을 앓는 31개월 아이의 엄마인 임채원씨는 건강보험 재정으로 희귀질환 치료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했다. 임채원씨의 아이는 생후 8개월 되는 해 SMA로 진단받았다. 다행히 '스핀라자'라는 약이 있었지만 4개월마다 투약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약효가 좋지 않으면 투약이 끊길 수 있다는 불안감도 견뎌야 했다.
다행히 지난해 8월, '졸겐스마'라는 20억원 초고가 치료제가 건강보험 인정을 받았다. 투약 이후 아이는 빠르게 건강을 되찾았다. 임채원씨는 아이가 두 발로 서있는 사진을 소개하며 "전혀 특별한 사진이 아니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누워서 자기 몸도 움직이지 못하던 아이가 내 손을 잡고 서 있는 찰나의 순간"이라며 "이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에 산다고 소개한 김용진씨는 난치성 천식을 진단받았다. 호흡이 힘들고, 기침·가래가 멈추지 않아 일상생활 자체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신약의 임상 시험에 참여했고, 빠르게 건강을 되찾았다. 김씨는 "가래가 안 나와 검사를 못 할 정도로 확연히 좋아졌다"며 "요새는 손자와 장난삼아 달려보기도 한다"고 했다. 문제는 임상 시험이 끝난 이후다. 그때는 고가의 약값을 지원받을 수 없다. 김 씨는 "저같이 기존 약으로 치료되지 않은 환자를 위해, 새로운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정부 관계자에게 급여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안희경 가천대길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자신이 직접 진료했던 환자들의 일화를 소개했다.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았지만 신약의 허가와 급여를 기다리다가 끝내 사망한 환자 사례도 소개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받은 신약이 국내로 들어오기까지는 1~3년의 시간이 걸린다. 안 교수는 "1~3년은 전이성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는 하루하루가 절박한 시간이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일단 눈앞에 물에 빠진 사람(환자)이 있으면 물에 가장 잘 뜰만한 것(약)을 던져주고 싶은 게 의료진의 마음"이라며 △유연한 급여 적용으로 신약 접근성 강화 △다양한 본인부담제도 운영 △신약의 가치 인정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결국 누가, 얼마나 돈을 더 낼 것인가의 문제이다"며 "암 환자, 경증질환자, 건강한 사람들, 제약사, 정부가 서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덧붙였다.
곽명섭 김앤장 변호사(전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는 중증·희귀질환 보장성을 강화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도 담보하는 '윈-윈'(win-win) 방안을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고가의약품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건 현재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침이다. 경제성평가 면제, 희귀의약품의 신속 급여 등재가 대표적인 정책이다. 지난 5월에는 신속등재 1호 사례로 소아 구루병 치료제 '크리스비타'가 보험 급여 인정을 받았다.
곽 변호사는 장기적인 추세에서 건강보험 재정 악화는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2030년까지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생산가능인구가 부산시 인구수만큼 줄어든다"며 "이 상황은 계속해서 심각해지기 때문에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 건강보험료의 45% 정도를 쓴다. 국민 1인당 월평균 진료비의 2.5배 수준"이라며 "65세 이상 인구가 극적으로 늘어나는 부분은 많은 고민 점을 안겨 준다"고 설명했다.
특히 OECD와 비교해 높은 1인당 평균 입원 일수와 의료 장비 이용량, 국민 1인당 의사 외래 진료 횟수를 지적했다. 곽 변호사는 "경증환자의 약제 사용량을 억제할 관리 기전이 없고 중증질환자가 급증하는 만큼 지불 제도, 보험료 부과, 의료 정책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진형 미래건강네트워크 이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종양내과 교수)는 "아침 8시, 병원 내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환자나 보호자의 90% 이상이 60세 이상으로 보인다"며 "병원 이용률을 줄이지 않는 한 여러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없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4% 수준의 국고 지원 규모를 법정 비율인 20%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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