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나이로 100세···‘갈비 사자’ 청주동물원으로 이사 성공
5일 오후 충북 청주동물원. 온도조절 장치가 탑재된 차량에서 동물원 입구를 통과해 사자들이 있는 우리 앞에 도착했다. 차량 화물칸이 열리자 특수제작된 케이지에 들어있는 수사자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사자의 상징인 갈기는 풍성했지만 몸통에는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났다. 네 다리에도 근육이 빠져 앙상한 뼈가 보였다.
경남 김해 부경동물원에서 이사온 이 사자는 ‘갈비 사자’로 불리는 늙은 수사자다. 나이는 20살로 사람으로 치면 100살이 넘는다. 2004년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태어나 2016년 부경동물원으로 옮겨졌다.
2013년 문을 연 부경동물원은 민간 동물원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이 동물원이 동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비좁은 우리에서 이 사자가 삐쩍 마른 채 힘없이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시민들이 김해시 홈페이지 등에 “사자를 구해달라”는 글을 잇달아 올리기도 했다.
청주동물원은 지난달 부경동물원에서 이 사자를 데려오기로 했다. 사자를 실내의 비좁은 우리에서 벗어나 야외 방사장에서 자연과 가까운 환경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다. 부경동물원 측도 이관에 동의했다.
청주동물원은 이 사자를 이송하기 위해 이날 특별작전에 돌입했다. 마취 없이 사자를 케이지에 넣기 위해서다. 사자는 나이가 많아 마취약을 사용하면 생명이 위험하다. 앞서 청주동물원은 사자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지난달 22일 부경동물원 사자 우리에 특별제작된 케이지를 설치한 바 있다.
청주동물원의 ‘사자 이송작전’은 5일 오전 11시 시작됐다.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은 “사자가 2시간 정도 사육사들과 대치하다 케이지에 들어갔다”며 “마취 없이 케이지에 들어가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후 같은 날 오후 6시 사자를 태운 차량이 부경동물원에서 270㎞ 정도 떨어진 청주동물원에 도착하면서 마무리됐다. 꼬박 7시간이 걸린 셈이다.
청주동물원은 이번 작전을 위해 가로 2.5m, 세로 1.5m 크기에 앞뒤가 열리는 케이지를 특별 제작했다. 영상 25도를 유지할 수 있는 온도조절 장치가 탑재된 무진동 차량으로 사자를 이송했다.
김 팀장은 “사자가 멀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차량을 시속 80~90㎞ 속도로 운행하고, 1차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었다”며 “이 때문에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고 밝혔다.
청주동물원 측은 이 사자를 야생동물보호시설에서 보호할 계획이다. 지난해 지어진 야생동물보호시설은 1652.89㎡ 규모로 실내동물원이나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생활하는 동물을 보호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12살된 암컷 사자와 19살된 수컷 사자가 있다. 이 사자가 머무르는 격리 방사장은 495.8㎡ 크기로 부경동물원의 실내 사육장보다 수십 배 넓은 면적이라고 청주동물원은 설명했다. 바닥도 콘크리트가 아닌 흙바닥이고, 나무구조물 등이 있어 사자가 운동과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청주동물원은 이 사자의 이름을 ‘바람이’라고 정했다. ‘앞으로 잘 살길 바란다’는 뜻에서다.
김 팀장은 “사자는 무리를 이루는 동물인 만큼 기존 사자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격리 방사장에서 마주보기 등의 훈련을 통해 서로 경계심을 허문 뒤 청주동물원에 있는 사자 2마리와 합사를 통해 무리를 이루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주동물원은 바람이의 건강을 위해 소고기와 닭고기 등 영양가 높은 먹이를 주고, 영양제도 주기적으로 놔 줄 계획이다. 또 혈액검사, 단층촬영, 초음파 검사 등 건강검진도 한다.
김 팀장은 “늙은 바람이가 자연과 가까운 청주동물원에서 여생을 행복하게 보냈으면 한다”며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흙을 밟으며 행동 동화 프로그램 치유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청주동물원에는 임상병리, 영상진단, 야생동물의학을 전공한 석·박사급 수의사들과 경험 많은 사육사들이 사자·호랑이·늑대 등 69종 동물 376마리를 돌보고 있다. 이곳에는 사육곰 농장에 갇혀 있다가 2018년 구조된 ‘반이’와 ‘달이’도 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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