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때 라면 들고 구호활동… 역발상으로 브랜드 각인시켰죠" [먹거리로 하나 된 한일]

김경민 2023. 7. 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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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매운 라면' 시장을 개척한 신라면 열풍의 주역 김대하 농심재팬 사장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두 번의 시련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일본통'이면 누구나 밤새 이야기할 수 있다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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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매운라면 열풍 일으킨 김대하 농심재팬 사장
동일본 대지진 당시 끝까지 남아... 무너진 창고서 농심제품 꺼내 후쿠시마 지역에 구호물자 전해
한일관계 경색시기 ‘혐한’도 극복
2022년 매출 120억 6년새 4배로
김대하 농심재팬 사장이 지난 12일 회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경민 도쿄특파원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일본에서 '매운 라면' 시장을 개척한 신라면 열풍의 주역 김대하 농심재팬 사장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두 번의 시련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일본통'이면 누구나 밤새 이야기할 수 있다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의 일이다. 이 때의 기억은 그의 경영 인생 전부를 통틀어 가장 큰 고난과 훈장으로 남았다.

"우리는 사실 그 때 굉장히 당황했어요. 외국계 기업들은 첫날 거의 모두 자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나라 주재 기업들도 한국은 못 가도 비교적 안전한 오사카로 모두 피신했고요. 우리도 처음에는 먼저 가족을 보냈고, 직원들도 하나둘 떠나 마지막에는 주재원 4명이 남아 회사를 지켰어요. 아내가 가기 전 끓여놓은 곰탕을 나눠 먹으며 전우처럼 버텼죠. 회사가 성장한 지금은 자랑스러운 에피소드가 됐습니다."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한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은 일본사회를 순식간에 아노미로 몰아넣었다. 직원들도 오사카로 이동하자고 계속 건의했지만 김 사장은 이럴 때일수록 도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약 20명이던 우리 직원들은 일본 기업들처럼 신입사원으로 들어와서 입사 교육을 받고 처음부터 애사심이 투철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여기 저기서 경력으로 어렵게 모은, 어찌보면 모래알 같은 조직이었죠. '우리가 하나가 되자'고 강조했던 사장이 지진이 났다고 도망가면 안 되잖아요."

대지진 발생 며칠 후 그는 '후쿠시마에 농심 제품을 지원하는 게 최고의 마케팅이겠구나' 생각하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상황에서 어찌보면 무모한 아이디어였다. 그도 "지금 같으면 직장 상사의 갑질로 난리가 날 것이다. 그때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전우애 같은 게 있어서 리어카라도 끌고 가자고 했다"고 회상했다. 이 때 1명은 도쿄에서 상황을 보고, 나머지 3명과 끊겨버린 후쿠시마행 차편을 겨우겨우 수소문해 특별편성된 야간버스를 탔다.

"실제 목격한 센다이는 처참했습니다. 무너진 창고의 문을 열고, 우리 농심 제품을 센다이 구청을 통해 지역 사회에 지원했어요. 센다이 지점의 우리 직원들에게도 구호물자를 보냈습니다. 돌아올 때 방호복을 입은 자위대가 멀쩡하게 양복을 입은 우리를 이상하게 보더니 일반인은 우리가 유일하다고 놀라더군요."

두번째 위기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2012년, 한일 관계가 경색되면서 매출이 뚝 떨어졌을 때다.

"2008년 겨우 흑자전환을 했는데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일본 내 전국적인 혐한 운동이 일었고, 다시 회사가 적자의 수렁에 빠졌어요. 대지진도 버티며 10년간 직원과 함께 한 고생이 물거품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죠. 너무 억울해서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하지만 결국 '신라면'이라는 브랜드는 혐한마저도 이겨냈다. 이후에도 한일 관계는 수차례 냉탕, 온탕을 오갔지만 2016년 30억원이었던 매출은 2022년 120억원까지 매년 앞자리를 바꿔 성장했다.

"일주일에 신라면을 한번 먹던 일본인들이 두번, 세번 먹게 된 거죠. 자체적으로 신라면의 성장이 정체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매년 20~25%씩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역시 답은 브랜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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