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저작권] ③AI는 과연 스스로 사고할 수 없을까?...AI, 저작권자 되려면

노자운 기자 2023. 7. 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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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왼쪽)와 율리안 판 디켄이 AI로 만든 이미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율리안 판 디켄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해 9월, 미국 작가 크리스티나 카슈타노바가 AI로 만든 만화 ‘새벽의 자리야’가 저작권을 인정 받으며 큰 화제가 됐다. AI를 이용했지만 작가가 직접 복잡한 프롬프트(명령)를 입력해 얻은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미 저작권청은 5개월 만에 입장을 180도 바꿨다. 미국법상 작품의 저작권은 인간 작가에게만 적용되며, AI 혼자 그린 작품의 저작권은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저작권청은 소재 선정, 만화의 구성 및 배열 부분에 대해서만 저작권을 일부 인정했지만, 그림 자체엔 저작권이 없다고 판단했다.

#올해 3월에는 네덜란드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걸작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 대체작으로 AI의 그림을 걸었다. 작가는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에 프롬프트를 입력해 이 패러디 작품을 완성했다. 이를 두고 미술계에서는 과연 AI의 산출물이 ‘예술작품’으로 대우 받을 자격이 있느냐며 거센 논란이 일었다. 한 작가는 “페르메이르의 유산은 물론 활동 중인 예술가들에 대한 모욕”이라며 “미술관에서 나오며 뺨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AI의 작품은 ‘저작물’이 될 수 없는 걸까. 국내외 현행법이 저작권 소유자를 ‘인간’으로 규정하는 한, AI의 그림이나 소설은 아무리 작품성과 예술성이 뛰어나도 저작권법으로 보호 받기 어려워 보인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저작권을 인정받을 날은 앞으로도 오지 않는 걸까.

◇AI 산출물, 부정경쟁방지법으로 보호할 수도

현행법상 소유권을 향유할 수 있는 건 사람(자연인)이나 법인뿐이다. 저작권법 제2조 1,2항은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 저작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특허권자(발명자)의 자격을 논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난달 30일, 서울행정법원은 미국 AI 개발자가 AI의 ‘발명자’ 자격을 인정해 달라며 특허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오정익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지난해 미국의 한 미술 대회에서 AI가 제작한 그림이 대상을 받은 사례가 있는데, 누구든 보면 알겠지만 결코 아무나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다”라며 “명령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결과물이 천지차이”라고 말했다.

제이슨 앨런이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이용해 제작한 그림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위키피디아

작년 9월, 미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에서 온라인 게임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제이슨 앨런이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이용해 그림을 제작,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바 있다. 앨런의 수상작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을 놓고 미술계에선 뜨거운 논쟁이 일었다.

생성형 AI로 수준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그 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구입하고 프롬프트를 적절히 입력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AI가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적합한 지시어를 내려주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존재한다. 얼마 전 국내 AI 기반 콘텐츠 기업이 프롬프트 엔지니어를 공개 채용하며 1억원의 연봉을 제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도로 훈련 받은 AI와 정교한 프롬프트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타인의 성과’로 간주돼 부정경쟁방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AI의 산출물은 AI를 구입하고 학습시킨 사람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물로 평가해야 하며, 이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로 평가할 여지가 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1호 파목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한다.

현행 저작권법 안에서 다른 법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AI 산출물을 베끼는 행위를 저작권이 아닌 ‘데이터베이스(DB)권 침해’로 규정하면, AI로 만들어낸 글이나 그림도 충분히 법적 권리를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진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AI를 통해 만든 생성물로 특정한 편집물을 제작하고, 이 편집물에 쉽게 접근하고 검색할 수 있는 DB를 구축한 뒤 지속적인 유지·보수를 한다면 DB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DB는 저작물에서 요구하는 창의성이 없어 저작물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재산권의 일종으로 저작권법에서 침해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우리 저작권법 제2조20호는 ‘데이터베이스 제작자는 데이터베이스의 제작 또는 그 소재의 갱신·검증 또는 보충에 인적 또는 물적으로 상당한 투자를 한 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93조에는 DB 제작자의 권리가 열거돼있다.

크리스티나 카슈타노바가 AI로 제작한 만화 '새벽의 자리야'. /크리스티나 카슈타노바 페이스북

◇사고는 인간만 할 수 있는가

향후 생성형 AI의 사용이 더 보편화한다면 법원도 AI 산출물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저작권을 누가 소유할지’를 놓고 치열한 법적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

저작권을 ‘AI를 소유한 자’가 가질지, 아니면 그 AI를 이용해 프롬프트를 입력한 사람이 가질지 판단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저작물을 상업화하게 되면 막대한 이윤 창출도 가능하기 때문에 양측이 권리를 놓고 다투는 사례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예 AI가 법인격(법적으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면 이런 복잡한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다. 저작권 침해 문제에 있어서 책임소재도 분명해지고, AI 산출물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문제도 간단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AI가 법적 개념의 ‘자연인’으로 인정받는 게 타당할까.

AI의 법인격 문제를 따져보려면 “인간의 사고가 인간 고유의 것인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현재 AI가 거의 ‘영혼을 갖춘 수준’이라는 평가도 나오나, 아직은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

AI가 자연인이 될 수 없다고 보는 쪽에서는 ‘중국어 방’ 이론을 많이 인용한다. 중국어 방은 미국 철학자 존 설이 고안한 사고실험으로부터 파생된 철학적 논쟁이다.

중국어를 전혀 읽을 줄 모르는 외국인 한명이 방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 외국인은 중국어로 된 질문과 이에 대응되는 중국어 답변을 학습한다. 방 밖에 있는 사람이 중국어로 질문을 써서 방 안으로 넣으면, 외국인은 학습한 내용을 토대로 알맞은 답을 적어 낸다. 이는 질문과 답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해도 가능한 일이다.

AI의 법인격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AI가 중국어 방 안에 있는 외국인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외국인이 중국어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기계적으로 습득한 답을 내놓았듯, AI도 인간의 뇌처럼 사고하는 게 아니라 알고리즘에 따라 학습한 대 결과물을 산출할 뿐이라는 것이다.

오 변호사는 “저작권의 책임을 누구에게 귀속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기존 법리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며 “AI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건 아직 지나치게 앞서나가는 얘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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