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PX 판매 계약 어겼다”…국군복지단, 농협홍삼·TS샴푸 등에 위약금 30억 부과
‘초고가 크림’ 주장하던 업체엔 위약금 20억원 부과
일부 업체 반발…공정위 제소·행정소송 검토 중
국군복지단이 군마트(PX)에 납품 중인 일부 제품이 일반 시장에서 정상거래되지 않는 점 등을 문제로 삼아 해당 업체들에 수십억대 위약금을 부과한 사실이 5일 확인됐다. 복지단이 위약금을 부과한 업체에는 LG생활건강과 농협홍삼 등 대기업 계열사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군복지단이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2023년 군마트 입점업체 위약금 부과 현황’에 따르면 국군복지단은 올해 입점업체 15곳에 총 32억4327만원의 위약금을 부과했다. 복지단은 지난해 22개 업체에 1억2000만원의 위약금을 부과했다. 1년 만에 위약금 규모가 30배 가까이 늘었다.
국군복지단은 지난 2021년 화장품 업체들이 PX에 입점하기 위해 가격을 부풀리는 등 시장 교란 행위를 했다는 본지 보도 이후 시장 조사 절차를 강화했다. PX 납품하려는 제품은 시중 20개소 이상의 판매처를 유지해야 하며, 시중 판매처에서의 매출이 PX 상위 20개 매장 매출의 50%를 넘어야 한다.
복지단은 만약 시중 판매 실적이 PX 판매 실적의 50%에 미달할 경우 ‘시장가격 교란 물품’으로 판단한다고 계약서에 명시했다. PX 유통에 정통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PX 상위 20개 매장에서 4개월 동안 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면, 이마트나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시중 판매처 20곳에서 판매실적 5억원 이상을 올려야 한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올해 가장 많은 위약금이 부과된 업체는 본에스티스로 20억8634만원이 부과됐다. 이 업체는 PX에서 ‘송윤아 크림’으로 홍보하는 ‘다이아몬드 리페어 퍼펙트 세트’를 판매 중이다. 이 업체는 해당 제품을 시중에서 56만원에 판매 중이지만, PX에서는 93%의 할인율을 적용해 3만원대에 제품을 판매하겠다며 복지단과 계약을 체결했다.
이 제품은 2021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초고가 제품이라고 눈속임한 ‘거품 가격 크림’이라는 지적을 받았으나, 2년여가 지난 현재까지 계속 PX에서 판매 중이다. 부과된 위약금을 기초로 역산하면, 본에스티스는 ‘다이아몬드 리페어 퍼펙트 세트’ 한 제품만으로 PX에서만 연간 최소 350억원에서 최대 7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국군복지단 위약금 규정은 ‘중한 제재’에 대해 연평균 매출액의 3~6%를 위약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두 번째로 많은 위약금이 부과된 업체는 고운세상코스메틱으로 총 3억2115만원의 위약금이 부과됐다. ‘닥터G’라는 브랜드로 알려진 이 업체는 클렌징폼과 필링젤, 앰플 등 3개 제품에 위약금이 부과됐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은 지난해에도 달팽이크림과 마유크림 등이 시장 가격 교란 행위 품목으로 인정돼 위약금 3700만원을 부과받은 바 있다.
‘닥터엘리자베스’라는 브랜드로 프로바이오틱스 등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드림리더에는 1억5689만원, 탈모샴푸로 유명한 TS샴푸에는 1억3501만원의 위약금이 부과됐다. 에스디생명공학과 클리오 등도 각각 1억원 이상의 위약금을 부과 받았다. 한삼인 등을 판매하는 농협홍삼에는 6600만원, LG생활건강에는 3779만원의 위약금이 각각 부과됐다. 베지밀을 판매하는 정식품은 783만원의 위약금을 부과받았다.
중한 제재로 위약금 처분을 받은 제품에 대해선 향후 PX 입점 계약 해지 및 향후 입찰 제한 조치까지 내려질 수 있다. 군 관계자는 “이번에 위약금이 부과된 업체들은 국군복지단과의 계약 사항을 위반해 심의 절차를 거쳐 위약금 처분이 내려진 상태”라며 “추가 제재로 해약 처분이 이뤄지는 경우에는 향후 2년 간 입찰을 제한한다”고 말했다.
위약금을 통보받은 업체들은 현재 계약서가 납품업체에 불리하게 설정돼 있다며 복지단에 재심의를 요청한 상태다. 가장 많은 위약금이 부과된 본에스티스 관계자는 “현재 위약금에 대해 복지단에 재심의를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위약금 부과 전 이미 재심의 요청을 했으며 최종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탈모 전문 샴푸 제조기업인 TS트릴리온과 고운세상코스메틱 등도 “국군복지단의 요청에 따라 충분한 소명 자료를 제출했고 재심의 신청을 해놓은 상태”라고 했다.
일부 업체는 공정거래위원회에 계약서의 불공정성 여부 심사를 해달라고 요청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위약금 처분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도 검토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체 관계자는 “공정위 약관심사과를 통해 해당 계약서가 위탁계약업체에 불리하게 설정된 것이 아닌지 검토를 받을 것”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군복지단이 계약서에 요구한 시장교란행위 규정을 준수하는 게 쉽지 않다”며 “PX에서 판매된 제품 중 일부가 시중에 ‘리셀’ 형태로 유출돼 정상가에 판매하는 매장의 매출이 떨어지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시중 매장에서는 4~5만원대에 판매하는 제품을 PX에선 장병 복지 차원에서 1만원대에 판매했는데, 해당 제품이 리셀시장에서 정상가보다 저가에 암거래되면서 시중 매장 판매 실적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시기에 따라 일반 유통 매장 판매 실적이 감소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이 위약금을 피하기 위해 일반 유통매장 예상 판매액에 따라 납품 수량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하지만 계약서는 국군복지단이 요구한 수량을 업체가 정해진 시일까지 공급하지 못하면 지체일수에 따른 지체 상금도 부과하도록 돼 있다”고 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장병 복지와 브랜드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PX에 입점했는데, 손해배상이나 환불처리, 위약금 관련 규정이 납품업체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설정돼 있다”며 “회사 내부적으로 PX 입점을 포기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PX 유통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가격 부풀리기로 입찰한 업체의 경우 미리 위약금 부과를 예상하고 제품 판매 가격을 6%가량 올린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반면 일반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제품을 납품했다가 PX에서 너무 많이 팔려 위약금이 부과되는 업체도 있다. 복지단이 고민할 부분”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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