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만에 시중은행 탄생...대구은행, 시중은행 전환하면 은행권 판 흔들까
대구·경북 지역에 기반을 둔 국내 최초의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이 올해 시중은행으로 전환한다. 1992년 평화은행 이후 31년만에 처음으로 신규 시중은행이 생기는 것이다. 시중은행은 지방은행과 달리 전국을 무대로 영업할 수 있다. 시중은행으로 거듭난 대구은행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 과점 체제를 뒤흔드는 ‘메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5일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포함해 지방은행·인터넷전문은행·특화전문은행 등 다른 은행 업권에서도 신규 사업자 진입을 적극 허용함으로써 은행권 경쟁에 불을 붙이는 내용의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대구은행, 은행 과점 깨기 위한 카드
정부가 31년 만에 ‘시중은행 인가’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5대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가 장기화하면서 경쟁이 제한적으로만 이뤄지고, 그에 따라 소비자 혜택이 줄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5대 은행이 은행권 전체 대출·예금의 63.5%, 74.1%를 차지할 만큼 대형은행 편중이 심각한 상태다. 5대 은행의 지배력이 커지면서 은행들은 금리를 경쟁적으로 조정하지 않고, 비슷한 금융상품만 우후죽순 출시하는 등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일부 은행은 금리 담합 혐의로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까지 받는 실정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5일 “국내 은행이 손쉽게 수익을 내면서 글로벌 금융회사로 발전하기 위한 변화 노력은 부족하다”며 “무엇보다 시장의 힘에 의한 경쟁 촉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시장의 힘’이 바로 대구은행이라는 준비된 사업자의 진입이다. 1968년 설립돼 55년의 업력을 가진 대구은행은 시행 착오 없이 바로 5대 은행과 경쟁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 대구은행은 5대 은행에 비해 자산 규모나 대출액, 지점 등 덩치는 작지만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외국계인 SC제일은행(45조원)보다 대출 규모(약 50조원)가 크고, 수협은행(52조원)보다 자산(약 67조원)이 많다.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순이익률(ROA)도 지난해 0.56%로 NH농협은행(0.46%), SC제일은행(0.35%)보다 높다. DGB금융그룹 김태오 회장은 이날 시중은행과 경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에 “성숙하고 내밀한 성장이 훨씬 중요하다”며 “강소은행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판도 변화 쉽지 않을 것”
대구은행 입장에서도 시중은행으로의 전환은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는 결단이다. 대구·경북 지역의 산업기반 위축, 고령화 심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영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전국구로 발돋움하며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지방은행도 전국 17개 시·도 중 16개까지는 영업이 가능하지만, 명칭을 바꾸고 시중은행으로 활동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대구은행의 설명이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대구은행 이름으로 수도권에서 영업하면 낯설어하고, 거래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많다”고 했다. 또 우량 등급임에도 지방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금조달 시장에서 높은 비용(금리)을 지불해야 하는 여건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서는 만기가 30년 이상인 장기 후순위채 기준으로 시중은행과 같은 신용등급인 지방은행이 평균 0.2~0.25%포인트 정도 높은 금리를 적용 받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금융위는 시중은행뿐 아니라 지방은행·인터넷전문은행·특화전문은행에 대해서도 “신규 진입을 적극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충분한 자금력과 실현 가능한 사업 계획이 있는 사업자라면 언제든 인가 신청을 받아 심사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날 금융위 발표 후, 전국 130만 소상공인에게 경영 관리 서비스(캐시노트)를 제공하는 한국신용데이터(KCD)는 “소상공인 특화은행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신규 사업자 허용 외에도 은행들의 세부 경영 상황 및 임원 보수 등의 비교 공시를 강화하고, 은행이 비이자이익을 늘릴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또한 저축은행의 영업 권역 제한을 완화(2곳→4곳)해 자연스러운 인수·합병으로 부실 저축은행이 정리되고, 은행에 견줄 수 있는 초대형 저축은행이 출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소식에 은행권 판도 변화로 경쟁이 촉진될 것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업계 베테랑인 대구은행이 앞으로 전국에서 공격적 영업을 펼치며 5대 은행 체제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7년 이후 큰 기대를 갖고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 3사(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의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점을 들어 대구은행도 ‘실패한 메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인터넷전문은행 3사의 은행권 예금과 대출 점유율은 각각 2.6%, 2%에 그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방은행보다 우수한 인력을 훨씬 많이 거느린 대형은행도 뾰족한 수가 없어서 지점망으로 이자 장사나 하고 있는데 대구은행이 어떤 경쟁력으로 그 틈바구니에서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며 “대구은행이 들어와도 은행권 변화가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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