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사회? 사회연대경제에서 길을 찾다
‘더나은 미래건설: 평화롭고 공정한 세상을 위한 사회연대경제’를 주제로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제9회 씨리엑(CIRIEC)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행사는 공공·사회적·협동조합 경제 국제연구정보센터(CIRIEC, 이하 씨리엑)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국회미래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연구원, 성공회대학교, 한국협동조합학회가 주최했다.
씨리엑은 1947년에 설립된 글로벌 비영리 국제 네트워크로서, 23개국에 공공, 사회적경제, 협동조합에 특화된 연구자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국내에는 성공회대학교가 기관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올해는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씨리엑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기조발언에 나선 정현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은 한국의 사회적 경제 현황을 소개했다. 국내 사회적 경제 규모는 2020년 기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소셜벤처 등 5개 부문에 걸쳐 2만6천개 기업, 매출 11조4천억 원에 이른다. 공제 및 비영리단체 등을 사회적 경제 조직으로 포괄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을 적용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진다. 기업 수 약 13만개, 종사자 약 13만9천여명, 매출 약 280조로 우리나라 전체 경제 규모(GDP)의 14.47%를 차지한다. 이는 유럽 선진국들과 비등한 수준으로, 국내 사회연대경제의 높은 경제 기여도와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 원장은 “국내 사회적 경제는 제도·정책적 지원과 결합해 급성장했다. 최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그들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선 조직의 성과를 측정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국가차원의 통계 및 평가체제 개발 및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리 베이스샬가드 국제노동기구(ILO) 지속가능기업국 국장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연대경제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국제노동기구는 유엔에 앞서 국제기구로서 가장 일찍 사회연대경제의 역할에 주목했고, 고령화, 기후위기 속 노동전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연대경제와 노동경제의 연계를 통해 혁신적 방안을 연구하고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노동기구는 지난해 6월 ‘양질의 일자리와 사회연대경제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사회연대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 양질의 일자리, 환경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회연대경제의 보편적 정의 내용을 담았다. 국제노동기구의 사회연대경제 정의는 올해 4월 채택된 유엔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활성화’ 결의안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베이스샬가드 국장은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로 인해 돌봄 노동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고 기후위기로 인한 노동의 정의로운 전환과 양질의 노동에 대한 아젠다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이런 상황 속에 민주적 거버넌스를 기반으로 협동과 연대의 가치를 현장에서 실천하는 사회연대경제는 혁신적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기조발제에 나선 캐서린 깁슨 웨스턴시드니대학 교수는 최근 환경, 사회, 경제적 위기는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체제가 유발했다고 비판하며, 기존 주류 경제가 아닌 다양한 방식의 경제에 대한 논의와 실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류 경제학은 민주적 거버넌스를 위한 시민의 의무, 인종 평등에 대한 백래시(Backlash, 사회적 반발)를 가져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리행동강령이 존재하지 않는 경제학은 인종, 사회, 지리적 불평등과 연대와 공감의 상실과 같이 경제가 낳는 피해는 외면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깁슨 교수는 “경제 성장 위주의 자본주의 시장 체제가 유발한 피해를 인정하고, 성장과 진보를 재평가하고 정의해야 한다”며, “사회연대경제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기업 활동을 지원하고, 영리 외에 사회적 가치를 위한 기업 활동과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가능하도록 자산, 상품 및 서비스를 거래하는 방식을 다양화하는 경제 방안을 지원하고 실천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본회의에서는 최근 국제노동기구, 경제협력개발기구, 유엔 등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사회연대경제를 주요 정책 아젠다로 끌어오는 흐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시멜 에심 국제노동기구 협동조합국장은 “노사정이 참여하는 국제노동기구는 지난 25년간 사회연대경제 관련 20여개의 프로젝트와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행에 대한 내부 요구가 높아졌다. 특히, 청년, 여성 노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비공식 경제의 공식화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사회연대경제 정의에 대한 논의와 나아가 이를 연계한 방안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일청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연구조정관은 “유엔의 사회연대경제 결의안 채택 과정은 유엔 내에서 독특한 사례”라고 언급하며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대다수 회원국을 대상으로 이렇게 빠른 시간 내 사회연대경제가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국제노동기구를 비롯해 사회연대경제 의미와 역할에 공감하는 기관들의 결단력 있는 협력으로 이뤄낸 성과”라고 평가했다.
사회연대경제가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이행하고 현재 직면하고 있는 글로벌 차원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넘어서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아말 셰브로 경제협력개발기구 선임정책국장은 “사회연대경제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현장과 전문가 그룹 연구로 개발된 사회연대경제 실천 ‘툴킷’을 배포하고, 관련 통계 정보를 개발해 5년 마다 이행 성과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할 계획이다. 사회연대경제가 다양한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종합적 정보를 제공하고, 연구자, 활동가들과 이를 적용하고 실천하는 게 과제다”라고 말했다.
엄형식 국제협동조합연맹(ICA) 학술국장은 “국제기구들의 사회연대경제 결의안 채택에는 다양한 시민사회 단체들의 제안과 협력이 있었다. (사회연대경제) 관련 결정들은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를 통해 이뤄지지만, 사회연대경제의 핵심은 시민들의 목소리가 담긴 경제라는 점이다. 사회연대경제의 원칙과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도 정부 및 국제기구들과 체계적인 협력관계를 맺는게 중요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더나은사회연구센터장 ek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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