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산업정책 시대 재림에 임하는 자세

2023. 7. 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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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이 산업보호에 각축하는
'新워싱턴 컨센서스'의 시대
그래도 성장 주체는 '민간'
꼭 필요할 때, 절제된 방식의
'스마트 산업정책'만 해야

전 세계적으로 산업정책이 다시 유행이다. 산업정책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워낙 친숙해서 정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좁은 의미의 산업정책은 정부가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위해서 시장의 힘을 거스르더라도 개입하는 정책을 말한다. 도로, 철도와 같은 사회간접자본이나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처럼 간접적으로는 산업과 기업에 도움이 되지만 정부의 고유 역할인 정책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산업정책이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논쟁은 산업혁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30년 동안은 산업정책을 마치 담배처럼 어렵지만 끊어야 할 존재로 여기는 견해가 우세했다. 1989년에 나온 '워싱턴 컨센서스'는 개발도상국 정부에 경제의 자유화와 거시경제 안정에 노력을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오늘날 미국식 신자유주의 철학의 상징쯤으로 여겨지는 이 내용은 실은 남미 개발도상국들의 산업정책 실패를 반성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흐름이 반전된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중국이다. 우선 중국 경제의 성공 요인을 중국 정부의 전방위적인 산업정책에서 찾는 경향이 나타났다. 시장 흐름에만 맡겼더니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너무 커졌다는 두려움도 작용했다. 여기에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된 것과 코로나19를 거치며 정부 개입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점도 큰 역할을 하였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단순히 보면 우리 돈 850조원 이상을 노골적인 산업정책 추진에 쏟아붓는 내용이다. 지난 4월 말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은 새로운 철학을 '신(新)워싱턴 컨센서스'라고 표현하였다. 이미 산업정책에 적극적이었던 유럽연합(EU)이나 중국에 이어 미국까지 동참함으로써 새로운 산업정책 경쟁의 시대가 온 셈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명심할 부분은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해서 산업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정부가 시장을 대신해서 승자를 택하는 정책은 대개 부패와 비효율로 이어졌다. 일본과 한국, 중국으로 이어지는 소수의 성공 사례에도 과장된 측면이 많다. 한때 능력 집단으로 추앙받던 일본 통상산업성은 잃어버린 30년을 막는 데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 1970년대 이후에 중국의 발전을 이끈 것은 산업정책이 아니라 개방정책이다.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중국 정부는 2006년 이후에야 산업정책을 본격화했는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의 생산성 향상은 그 이후 저해되었다. 산업정책 전문가인 더글러스 어윈은 대규모 보조금에 기반한 정책을 부유한 국가들이 즐기는 사치재에 비유하며 함부로 따라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물론 한국이 처한 상황은 고약하다. 하필이면 반도체나 자동차 등 우리 주력 산업이 글로벌 산업정책 경쟁의 핵심 대상이다. 국제 정세상 미·중 대결에 뒷짐 지고 실리만 챙길 입장도 아니다. 그래도 산업정책 경쟁에 과도하게 뛰어드는 건 금물이다. 민간 주도 성장이라는 큰 틀을 유지하며 꼭 필요한 부문에만 그리고 효과가 입증된 방식으로 개입하는 스마트한 접근이 필요하다.

늘 통찰력을 보여주는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은 산업정책의 참모는 좋은 장군과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최고의 장군은 전쟁을 싫어하지만 필요할 때는 싸움에 나서는 사람이다. 문제는 산업정책 담당자는 흔히 산업정책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 말은 우리도 새겨야 할 격언이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경제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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