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73년 전 스미스부대
전쟁이 발발했을 때 방어군이 초기 전투에서 얼마나 버텨주느냐는 전쟁 판세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승기를 잡지 못하는 것도 3일 만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개전 초 최대 요충지 마리우폴에서 석 달 가까이 항전한 마리우폴 수비대의 활약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가장 먼저 한국에 파병돼 북한군의 진격을 멈추게 한 연합군 부대가 있다. 스미스부대다. 73년 전 이들이 첫 전투를 치른 현장인 오산 죽미령에서 유엔군 초전기념식과 전몰장병 추도식이 5일 열렸다.
북한군 침공 직후 더글러스 맥아더 당시 미군 극동군 사령관의 명령으로 급조된 540명 특임부대는 6월 30일 부산 수영비행장을 통해 공수됐다. 대대장 찰스 스미스 중령은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의 탱크부대를 막아설 길목으로 오산 죽미령고개를 택했다. 개전 열흘 만인 7월 5일 연합군과 북한군의 첫 전투가 시작됐다. 하지만 최소한의 장비만 챙겨 급파된 스미스부대에 탱크 30여 대를 앞세운 북한군 5000명은 중과부적이었다. 교전 6시간 만에 부대원 540명 중 180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는 피해를 입고 가까스로 퇴각했다.
6·25 전쟁사에서 오산전투는 패전으로 기록된 탓에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지만 스미스부대의 희생은 결코 잊혀선 안 된다. 이들의 분전에 놀란 북한군은 연합군의 본격 참전을 예상해 열흘간 전열을 재정비했고, 그사이 국군과 연합군은 후방으로 물러나 진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스미스부대가 며칠 늦게 도착하거나 북한군 기세에 놀라 초전을 포기했다면 6·25 전쟁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스미스부대 직속 상관 월턴 워커 미8군 사령관은 워커힐호텔에 이름이라도 남겼지만 스미스부대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이들의 흔적은 죽미령평화공원 내 유엔군 초전기념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만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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