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도권 배제된 ‘수능 논란’…“킬러 타령? 그들만의 리그”
“서울 최상위권 학생들만을
위한 이야기 아니냐” 시큰둥
공교육 강화등 핵심 뒷전에
소모적 논쟁만 지속 비판도
“지역이나 사회적 소득 수준에 따라서 처한 상황이 다 다른데 어떻게 학생들 입장을 하나로 퉁칠 수 있을까요. 서울 목동만 아니라 경남 마산에도 학생들이 있어요.”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5일 개최한 수능사태 토론회에서 고등학교 3학년 김경훈군(18)은 최근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큰 괴리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군이 사는 경남 창원의 대다수 학생은 수시를 준비하는데 마치 수능에서 킬러 문항만 사라지면 학생들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김군은 “수도권 일반고에서는 모의고사 400점 만점에 380점대 나오는 학생들이 있지만 우리 학교는 1등인 친구의 모의고사 점수가 340점대고 주변 학교들도 비슷한 수준이다. 지역 일반고는 정시를 준비하기 좋지 않은 환경이니 선생님들도 어쩔 수 없이 정시 말고 학생부종합 전형을 준비하라고 하신다”면서 “교육 주체가 다양한데 이렇게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는 시도 없이 서울에 있는 소수 의견만 듣고 교육 정책을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50여일 앞두고 킬러 문항 배제부터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한 세무조사 등 조치까지 이어지자 비수도권 학생과 교사들 사이에선 “서울 지역의 최상위권 학생들만을 위한 이야기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지역 간 교육 격차나 공교육 강화 등 산적한 과제를 미뤄둔 채 킬러 문항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의 한 일반고에 재직 중인 10년차 역사 교사 이모씨는 “이번 논란은 일반고에선 최상위권 학생을 제외하고는 상관없다”면서 “충분한 변별력을 필요로 하는 의대나 서울대 준비생, 최상위권 재수생들의 요구에 대해서만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울산 일반고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24년차 교사 A씨는 “학생 20명 중 정시 준비는 3, 4명에 불과하다. 지역 학교에서 10등 안에 들어도 정시로 인서울 학교에 가기 어렵기 때문에 대다수가 수능은 수시에 필요한 최저등급을 맞추기 위해 공부한다”면서 “1등급 여부나 백분위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지역에선 어차피 킬러 문항을 포기시킨다”고 말했다. 킬러 문항이 입시에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기 김포에서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신재영씨(48)는 “서울에 있는 학군이나 학원 위주로 교육 정책이 정해지는 게 보이니 우리는 소외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킬러문항 논란도 공부 잘하는 비평준화 학교를 보낸 학부모가 아니라면 ‘그런 게 있냐’며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킬러 문항을 사교육 과열의 주요 원인으로 보는 것 역시 비수도권 현장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있다. 강원 원주의 고등학교 3학년 B양은 “주변에 내신이나 수시 준비를 위한 학원이 많다”면서 “킬러문항을 잡는다고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건 대치동에만 해당하는 얘기 아닐까. 좋은 내신 등급을 유지하려면 학원이나 과외를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해도 수시 중심인 비수도권의 사교육 비용은 줄어들진 않으리라는 것이다.
경북 경주에서 학교에 다니는 고3 자녀를 둔 신경진씨(52)는 “지역에서는 정시에 대한 정보력이나 학원 경쟁력이 서울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시를 잘 준비하지 않는다”면서 “모든 정책이 서울 사람 위주로 돌아가고, 정부가 지역의 목소리는 제대로 듣지 않는 것 같다. 수능 킬러문항도 지역에선 딴 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일타 강사’를 겨냥한 세무조사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신씨는 “지역에서는 인강(인터넷강의)이 접근성도 좋고, 학원보다 훨씬 저렴해 잘 이용해 왔다”면서 “사교육 강사 개인을 응징해서 될 일인가 싶다”고 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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