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다 6억잔 식혜로 구합니다”...환치기 성지 된 해외교민 단톡방

김민소 기자 2023. 7. 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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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사회에 만연한 ‘개인 간 환전’
환전 수수료·세금 절약 목적 ‘성행’
3년 이하 징역, 3억 이하의 벌금 可
현지 단속 어렵다지만... “국내 입국시 처벌”

“짜다 6억잔 식혜로 구합니다.”

4일 베트남 현지 교민 300여명이 들어가 있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이런 메시지가 올라왔다. 짜다는 베트남 찬 음료를 뜻하는데 언뜻 보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환치기를 뜻하는 은어로 구성된 문장이다. 여기서 ‘짜다’는 베트남 화폐인 동을, 식혜는 원화를 의미한다. 즉 6억동을 원화로 환전해줄 교민을 찾는다는 의미다.

미국 일리노이주 트로이에 사는 김 모(37) 씨는 지난달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4000달러가량을 원화로 환전했다. 김씨의 환전 상대는 같은 지역에 사는 교민 A씨. 김씨는 A씨와 교민들이 모여있는 단체채팅방에서 만나 환전을 하기로 했다. 김 씨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뒤 4000달러를 현찰로 지급했고 A씨는 김씨의 한국 계좌로 약 520만원을 입금했다. 김씨는 “한국 방문을 앞두고 원화가 필요해 환전 상대를 찾게 됐다”며 “환전 상대를 찾는 글은 단톡방에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올 정도로 교민사회에서 파다한 일”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이렇듯 최근엔 현지 커뮤니티를 통한 해외 교민 간 ‘환치기(불법 외환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단체채팅방 등을 통해 환전 상대를 찾고 수수료 없이 현지 화폐와 원화를 주고받는 식이다. 개인 간 외환 거래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음에도 교민들은 ‘일상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단속될 리 없다’며 거액을 주고받는 배짱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베트남 현지 교민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환전 요청 글이 오가는 모습(왼쪽), 헝가리 현지 교민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환전 요청 글이 오가는 모습(오른쪽)

교민들끼리 이뤄지는 환전은 명백한 불법이다. 외국환 업무는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등록한 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등록된 환전업자가 아닌 사람이 외환 거래를 할 경우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므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아는 사람들끼리 거래를 하더라도 외화와 원화를 교환할 때는 반드시 한국은행에 신고를 해야 한다. 매매차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3000달러 이내 거래는 제외되지만, 신고하지 않고 그 이상의 금액을 수령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태료에 처할 수 있다.

베트남 현지 교민 300여명이 있는 단체채팅방에는 지난 28일부터 5일까지 일주일간 100건에 가까운 환전 요청 글이 올라왔다. 화폐는 대부분 은어로 표현됐다. 미국 달러화는 ‘아메리카노’, 베트남 동은 ‘짜다(베트남 음료)’, 원화는 ‘식혜’라는 식이다. 원하는 환율과 메신저 아이디도 함께 남긴다. 사실상 교민 개개인이 환전상이 된 셈이다.

3000달러(약 389만원)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한 환전 요청 글도 수두룩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엘에이 교민 단체채팅방에는 “아이들 대학 등록금 때문에 그런데, 5만불(약 6497만원)을 환전하실 분 계신가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베트남 교민 단체채팅방에서도 “6억동(약 3282만원)을 식혜(원화)로 구한다”며 자신의 카카오톡 아이디를 적은 글이 올라왔다.

환전 사기를 벌이는 이도 등장했다. 필리핀 마닐라에 사는 한인 B씨는 올해 초 20만페소(약 469만원)를 사기로 잃었다. 원화가 필요했던 B씨는 교민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C씨와 직거래로 환전을 하기로 했다. 약속한 장소에서 C씨를 만난 B씨는 신분증까지 서로 공개한 후 환전을 진행했지만, 뒤늦게 원화를 지급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C씨가 조작된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준 후 현찰로 페소만 챙긴 것이다. 개인 간 외환거래는 불법이므로 B씨는 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이뤄지는 개인 간 금융 거래를 일일이 적발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탈세 목적이 의심되는 경우에 한해서라도 단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국내에서 자금출처 증빙이 힘든 탈세 자금을 해외로 송금하려는 경우도 있다”며 “정상적인 외환 송금 경로를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 간 환치기 방식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곽 변호사는 “매출 신고를 연간 5000만원으로 한 자영업자가 해외에 유학 경비를 1억씩 보낼 경우 정상적인 외환 거래 방법을 이용하면 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추후 자금출처에 대한 소명을 해야 하므로 환치기를 이용하는 것”이라며 “이런 목적이 의심되는 경우는 관계 당국이 단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관세청 관계자는 “교민들이 현지에서 하는 환치기 거래를 모두 추적하긴 어렵지만, FIU(금융정보분석원)와의 공조를 통해 환치기 의심 정황을 분석해서 단속해 가고 있다”며 “현지에서는 처벌이 어렵더라도 국내 지명수배 등을 통해 입국 시 불법행위에 상응하는 처벌을 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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