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문래동 뜨자 밀려나는 철공소 30년 장인들…"통이전 어떠냐고요?"

김지은 기자 2023. 7. 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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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식당 몰리면서 임대료 올라 문닫는 업체 늘어…새 협업공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
5일 오전 11시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이곳에 있는 철공소 업체 사장이 범용 선반 기계를 만지며 작업하고 있다. /사진=김지은 기자


"에휴 사실 여기 있어도 문제, 다른 곳으로 가도 문제예요."

이 사장은 선반 기계를 만지다 말고 골목길에 걸린 현수막을 올려다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현수막에는 '문래동 기계금속 집적지 이전 타당성 검토 및 기본 계획 수립 용역'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기자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거리를 찾아간 것은 비온 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쬔 5일 낮이었다.

이 사장은 "최근 문래동 임대료가 50% 이상 올랐다"며 "여기에 있자니 임대료가 걱정이고 막상 다른 곳으로 이사 간다고 하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고,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영등포구는 1279곳이 넘는 문래동 철공소들을 수도권 또는 서울 외곽지역으로 통째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머물었던 철공소 사장들은 시대 흐름에 맞게 변화해야 하는 걸 이해하지만 익숙한 것을 버리고 터전을 옮기는 것에는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5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골목길에는 '문래동 기계금속집적지 이전 타당성 검토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사진=김지은 기자


문래동 철공소 거리에는 젊은 예술 창작인들과 카페, 식당이 모여들면서 임대료가 크게 올랐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월세가 오르자 철공소 사장들은 가게 문을 닫거나 타 지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철공소의 경우 협업을 통해 제품을 완성시키기 때문에 업체들이 몰려 있어야 한다. 문을 닫는 업체들이 늘어나면 기존에 남아있던 철공소들까지 타격을 입는다. 이에 문래동 철공소를 외곽 지역으로 옮겨 새로운 협업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영등포구가 나선 것이다.

문래동 철공소들은 기술력을 인정받은 장인들이 모여 금속가공제작을 도맡아 왔다. 실제로 동네 곳곳을 둘러보니 20~30년 넘은 장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날은 최고기온이 27도를 기록할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지만 이곳 장인들은 목장갑에 마스크를 끼고 노련하게 금속 부품들을 제작했다.

매캐한 쇠냄새가 코를 찔러도 철공소 사장들은 "수십 년을 맡은 냄새라 익숙하다"고 했다. 이들은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수십 년간 기계를 만져왔다.

5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거리. 20~30년 넘은 업체들이 골목길에 모여있다. /사진=김지은 기자


문래동 철공소에서 20년 넘게 판금 제작 일을 했다는 김모씨는 "이전을 한다고 해도 사실 좋은 것보다 걱정되는 게 많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 사람들은 모두 형제 같은 사이"라며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익숙하기 때문에 일하기 편하다. 물건 하나 용접하려고 해도 그냥 자전거 타고 옆 가게에 가면 된다. 다른 지역으로 가면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나서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문래동 골목 골목길에서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문래동 철공소는 하나의 먹이사슬처럼 이뤄져 있어서 각자 필요한 일이 생기면 바로 옆 가게 철공소에 가서 부탁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로 이동하는 게 용이하기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에는 20년 넘은 장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진=김지은 기자


폐업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철공소를 운영하지 20년이 넘었다는 박모씨는 "내 나이가 65살인데 일은 점점 없어지고 기계 값은 오르고 있다"며 "어차피 새로 이사가서 기계도 사고 인테리어도 할 바에는 그냥 연금 받으며 생활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집단 이전에 기대감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문래동에서 30년 넘게 철공소를 운영한 김모씨는 "최근 문래동 400~500m에 있던 도금 업체들이 임대료가 오르면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거나 폐업했다"며 "그럴 바엔 도금업체와 가공업체들이 한꺼번에 공존하는 공단을 조성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는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매일 쇠냄새 맡으며 일을 한다"면서 "이런 환경에서 어떤 젊은이가 일을 하려고 하겠느냐. 여기 대부분이 50대, 60대인데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서 근무환경이 개선되면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 사람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모습. 이곳 장인은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20~30년 넘게 금속 부품 등을 제작해왔다./ 사진=김지은 기자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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