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시설에 ‘친일논란’ 백선엽 동상…시민단체 “한국전쟁 영령들 울분 토할 일”
호국영령 잠든 다부동기념관에 동상 용납 못해
‘친일파가 전쟁영웅이 되는 나라, 아~대한민국.’
5일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전적기념관 앞에 이 같은 문구의 대형 펼침막이 등장했다. 한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인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식을 앞두고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역위원회가 준비한 펼침막이었다. 이들은 ‘일제 앞잡이가 영웅 되면 대한민국이 뭐가 됩니까’ ‘백선엽, 참군인 청빈한 삶? 강남역에 수천억대 건물’ 등의 손팻말을 들고 “친일매국 백선엽, 가짜 영웅 만들기 멈춰라”고 외쳤다.
국가보훈부와 육군본부 주관으로 열린 이날 백 장군 동상 제막식에는 김기현 국민의힘 당 대표를 비롯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이종섭 국방부 장관, 이철우 경북도지사, 주민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다부동전적기념관은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최후 방어선에서 벌어진 ‘다부동 전투’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국방부가 1981년 지은 현충 시설이다. 전쟁기념관(서울)이나 유엔군초전기념관(경기 오산)과 달리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이자 최후 방어선이었던 곳에 있는 유일한 전쟁기념관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백선엽은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705인’ 중 하나인 국가 공인 친일파”라며 “백선엽(동상)이 어떻게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질 수 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 장군은 다부동 전투 당시 국군 제1사단을 지휘해 한국전쟁 영웅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 독립군 토벌대로 악명 높은 간도특설대에서 2년가량 복무한 사실을 근거로 친일 논란이 제기돼왔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도 백 장군이 1941~1945년 만주국군 장교로 침략전쟁에 협력한 점과 간도특설대 장교로 일제 침략전쟁에 참여한 점 등을 친일반민족 행위로 규정했다.
박찬문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역위원장은 “친일파가 해방 후 반공 영웅으로 신분을 세탁해 재등장했듯 백선엽도 일제에 충성했던 친일 장교에서 전쟁영웅으로 변신했다”며 “백선엽이 전쟁영웅이라는 건 허구와 과장이다. 낙동강 전선에서 8개 사단이 싸웠는데 어떻게 혼자만의 공으로 돌리나. 군부 집권 과정에서 미화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백 장군 동상은 4.2m 높이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이를 제작하는 데 국비 1억5000만원과 도비 1억원, 성금 2억5000만원 등 총 5억원이 들었다. 성금은 이우경 동상건립추진위원회장이 기부한 1억원과 한국자유총연맹, 종친회, 각 보훈단체 등이 마련했다.
앞서 경북도는 백 장군 동상 건립 예산은 보훈단체 등 주민의 자발적인 모금 운동으로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백 장군의 친일 논란을 의식해서다.
그러나 동상 제작에 앞장선 것은 경북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백 장군 동상 건립 기초 공사에 경북도가 5억원을 추가로 사용해 사실상 전체 비용의 60%를 부담했다는 것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추가로 든 5억원은 동상을 세우기 위한 공사가 아닌 조경 등 기념관 전반에 걸친 환경정비 작업을 진행하는데 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 다른 관계자는 “막상 성금으로는 부족하니 경북도가 나선 것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다부동전적기념관 앞에는 이달 중 이승만 전 대통령과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도 들어선다.
두 동상은 민간단체인 ‘이승만·트루먼 동상건립추진 모임’이 지난달 16일 경기 파주에서 다부동전적기념관으로 옮겨 세웠다. 2017년 제작됐지만 갈 곳을 찾지 못하다가 경북도가 다부동전적기념관으로 옮겨오는 것을 허가해줬기 때문이다. 당초 백 장군 동상 제막식 때 두 동상의 공개 여부도 검토됐으나 정치적 갈등을 우려해 연기됐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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