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왕실과 함께 윔블던에 돌아온 ‘테니스 황제’

선수들 “떨리고 영광” “내 경기도 봤으면”

1877년 세계 최초로 열린 테니스 대회인 윔블던에서 ‘황제’로 군림한 남자가 있다. 꽁지머리를 한 20세 청년은 2001년 윔블던 16강전에서 이 대회에서만 7번 우승한 피트 샘프러스(52·미국)를 5세트 접전 끝에 꺾으며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전매특허 원핸드 백핸드 등 우아한 플레이로 테니스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며 전설의 길을 걸었다. 4대 메이저 대회(호주오픈·프랑스오픈·윔블던·US 오픈)에서 총 20회 정상에 오르는 등 지금까지 윔블던 남자 단식 역대 최다 우승 기록(8회·2003~2007, 2009, 2012, 2017년)을 보유하고 있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가운데)가 4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윔블던 센터코트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그의 왼쪽엔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자빈, 오른쪽엔 아내 미르카. /UPI연합뉴스

그의 이름은 로저 페더러(42·스위스). 지난해 코트를 떠난 페더러가 4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윔블던 센터코트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대회 아나운서가 ‘페더러’를 호명하자 그는 새하얀 경기복 대신 말끔한 베이지색 정장을 입고 등장했다. 관중은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냈고, 페더러는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그는 별도의 발언 없이 곧바로 착석해 아내 미르카(45)와 케이트 미들턴(41) 영국 왕세자빈 등과 함께 여자 단식 1회전 엘레나 리바키나(24·카자흐스탄·세계 3위)-셸비 로저스(31·미국·49위) 경기부터 차례대로 관람했다. 페더러와 미들턴은 대회에 앞서 함께 윔블던 영상을 찍기도 했다.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자빈(왼쪽)과 현역 시절 ‘테니스 황제’로 군림한 로저 페더러가 윔블던 홍보 영상 촬영 당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윔블던 인스타그램

리바키나는 페더러의 존재감에 긴장한 듯 첫 포인트부터 서브를 두 번 연달아 놓치는 더블 폴트를 범하고 실수를 남발하며 결국 1세트를 내줬다. 집중력을 되찾은 리바키나는 세트스코어 2대1(4-6 6-1 6-2)로 승리한 후 “어렸을 때 항상 로저의 경기들을 보며 자랐다”며 “(팬으로서) 그를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떨렸나 보다”라고 수줍어했다.

엘레나 리바키나가 4일(현지 시각) 열린 여자 단식 1회전에서 승리한 뒤 환호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현역 시절 페더러와 2012년 윔블던 결승전 등 수많은 대회에서 실력을 겨룬 앤디 머리(36·영국·40위)는 “오늘 여기서 왕실과 ‘테니스 황제’를 볼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머리가 1회전에서 동료 라이언 페니스턴(28·268위)을 3대0으로 완파한 뒤 대회 관계자가 페더러에게 “오늘 머리의 활약에 만족하냐”라고 묻자 페더러가 고개를 끄덕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앤디 머리가 4일(현지 시각) 열린 남자 단식 1회전에서 이긴 뒤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로이터뉴스1

누군가는 페더러 앞에서 경기를 하지 못해 못내 아쉬워했다.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4일(현지 시각) 열린 남자 단식 1회전에서 승리한 뒤 환호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이날 센터코트 대신 1번 코트에서 라켓을 휘두른 세계 1위 카를로스 알카라스(20·스페인)는 “로저가 (센터코트에) 왔다고 들었는데, 살짝 질투가 났다”면서 “당연히 그가 내 경기도 보러 왔으면 한다”고 했다. 아직 윔블던 우승이 없는 알카라스는 1회전에서 제레미 샤르디(36·프랑스·542위)를 3대0으로 제치고 2회전에 안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