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 유기’ 수사 갑론을박···지난 10년 판례 살펴보니
경찰에 수사의뢰된 ‘출생미신고 아동’ 상당수는 베이비박스에 신생아를 놓고 간 경우이다. 이를 놓고 “명백한 유기 행위”라는 주장과 “아이를 살리려는 노력”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경찰은 법원 판례를 근거로 수사에 나섰지만 지난 10년간 법원이 베이비박스 유기에 실형을 선고한 사례는 1건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5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전날 기준 출생미신고 아동 사건 38건 중 베이비박스 유기 사건 24건에 대해 법리 검토를 하고 있다. 광주·전남에서도 전날 기준 출생미신고 아동 사건 34건 중 29건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맡긴 사례로 추정된다.
친모가 피의자로 입건된 경우도 있다. 인천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는 베이비박스에 딸을 유기한 혐의로 30대 여성을 입건해 수사 중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처벌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처벌을 반대한 한 누리꾼은 “혼자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살리고자 베이비박스에 두고 가는 것일텐데, 이마저도 처벌하면 누가 아이를 살리려고 하겠냐”고 했다.
경찰은 베이비박스 유기의 경우 법원 판례를 분석해 유기죄나 영아유기죄 등 혐의를 선별 적용할 방침이다. 경향신문이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결과 2013년 1월부터 2023년 1월까지 10년간 ‘베이비박스 유기’와 관련해 확정 판결을 받은 사례 16건 중 실형은 1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15건 중 무죄는 1건, 14건은 징영혁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집행유예가 선고된 14건 중 2건은 영아가 숨진 경우였다.
판결문에 적시된 유기 사유(중복 포함)는 ‘경제적 어려움’이 10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혼외임신이 8건, 가정환경 및 불화가 6건으로 뒤를 이었다. “입양 절차가 복잡하고 시일이 걸린다는 이유” 등 입양절차의 복잡성이 언급된 판결도 2건이었다. 피고 성별이 적시된 12건 중 피고인 유형은 친모 5건, 친부 4건, 친모와 친부 모두 재판에 넘겨진 경우 2건, 친모와 외조부모가 함께 법정에 선 경우 1건이었다.
재판부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행위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베이비박스라는 ‘장소’를 선택한 것은 정상 참작 사유로 봤다. “보다 나은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피해아동이 비교적 보호받을 수 있는 곳” “도움의 손길이 닿는 곳에 유기” 등이 정상 참작 사유로 적시됐다. 베이비박스에 영아를 유기한 후 아이를 되찾아 양육하거나 재판 과정에서 양육 의사를 보인 사례도 4건이었다.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두고 장소를 이탈한 것이 아니라 담당자와 상담을 거쳐 맡긴 사실이 인정된 경우에는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7월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두 아이를 잇달아 맡긴 20대 친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기’가 아니라 보육기관에 아이를 맡긴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 없이 ‘임시신생아번호’로만 존재하는 영유아 2236명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 사건을 420건 접수해 400건을 수사 중이라고 이날 밝혔다.
전문가들은 처벌보다는 예방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범죄 사실에 대해선 수사기관이 개별 사례를 조사해 밝혀내야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역량이 집중될 필요가 있다”며 “친모에 대한 처벌보다도 임신 여성이 출산이나 양육에 어려움이 있을 때 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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