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만큼 큰 시장” 유럽 ESS 주도권 잡기 한·중 물밑경쟁 뜨겁다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이 성장하는 유럽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를 저장할 ESS의 수요도 덩달아 늘면서다.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업계는 저마다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며 유럽 가정용 ESS 공략에 나섰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미국 진출이 막힌 중국 배터리 업계도 유럽으로 눈을 돌리면서 시장 주도권을 둘러싼 한·중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중국 전력장비 업체 선그로우는 영국 햄프셔주 브램리 지역에 100메가와트(MW)에 달하는 대규모 에너지 저장장치를 설치하는 프로젝트에 관련 장비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선그로우는 태양광 인버터와 전력용 ESS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전력변환시스템과 배터리를 20피트 컨테이너 크기로 모듈화한 ESS 장비를 해당 프로젝트에 공급할 예정이다.
유럽의 재생에너지 발전 수요는 늘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가정용 태양광 발전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ESS는 기후 여건이 좋을 때 생산한 에너지를 장기 저장해두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특히 불규칙한 날씨 때문에 에너지 생산량이 일정하지 않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유럽연합(EU) 산하 태양광발전협회인 ‘솔라파워유럽’에 따르면 유럽 가정용 ESS 설치 대수는 2021년 65만대에서 지난해 100만대로 치솟았다. 이 숫자는 2026년에 이르면 35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빠르게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EVE에너지는 지난달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유럽 스마트 에너지 엑스포’에서 최대 1만2000회의 충방전이 가능한 신형 리튬인산철(LFP) ESS를 선보였다. 세계 3위 ESS 기업 포윈 등과 총 23기가와트시(GWh)에 달하는 공급 계약을 맺기도 했다.
그동안 ESS 시장은 한국 기업들의 독무대였다.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2020년 55%에 달했다. 하지만 이 비율은 지난해 14.8%까지 하락했다. 잇단 ESS 화재 사고로 국내 투자가 주춤하면서다. 그 빈틈을 CATL, EVE, 비야디(BYD) 등 중국 업체들이 치고 올라왔다. 전기차용 배터리처럼, ESS 시장에서도 막강한 내수를 배후에 둔 중국 기업들은 공격적인 저가 공세로 점유율을 빠르게 늘려나가는 전략을 쓰고 있다.
국내 업계도 ESS 점유율 재탈환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유럽 2023’에서 LFP 배터리팩을 적용한 주택용 ESS 신규 브랜드 ‘엔블럭’을 선보였다. 소형 캐비닛 스타일의 제품으로, 실내외 좁은 공간에도 설치가 용이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ESS 배터리 팩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최대 5개(15.5kWh)까지 모듈을 확장할 수 있다. 삼성SDI도 같은 행사에서 ‘SBB(삼성배터리박스)’를 공개했다. 전력망에 연결만 되면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ESS 내부 배터리셀·모듈 등을 하나의 박스 형태로 미리 만들어 놓은 제품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폭염·한파 등으로 크고 작은 전력난을 겪는 사례가 늘면서 ESS 보급을 확대하려는 국가가 늘고 있다”며 “ESS 시장도 전기차만큼 폭발적인 성장세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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