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네덜란드처럼, 우리도 ‘기후소송’ 이길 수 있을까요?
[기후변화 ‘쫌’ 아는 기자들]
A. ‘그냥 상징적으로 제기한 소송 아니야?’ 할 수도 있겠지만, 꼭 결과가 부정적일 것만 같진 않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중순 헌법재판소에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 위헌 의견을 내기로 결정했거든요. 헌재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정경대 그랜섬 기후변화연구소가 5일 내놓은 ‘기후소송 글로벌 트렌드 2023’을 보면, 1986년부터 올해 5월까지 무려 51개 나라에서 2341건의 기후소송이 제기됐다고 합니다. ‘기후소송’은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방지하거나 이미 발생한 상황에 대해 책임을 묻는 소송을 의미합니다. 기후소송의 3분의 2 가량(1557건)은 2015년 이후에 제기됐다고 합니다. 대체 2015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기후소송이 급증하기 시작한 2015년은 ‘파리협정’이 체결된 해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협정에 서명한 195개 국가들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로 제한하기 위해 자국의 경제적·기술적 상황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출하고, 이를 지키기로 약속했습니다.
특히 그해, 기후소송에 기념비적인 ‘우르헨다 소송’의 첫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대체 어떤 소송이었냐고요? 환경단체인 우르헨다 재단은 2013년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정부는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17% 줄이겠다고 한 상태였죠.
6년간 이어진 소송 끝에, 2019년 네덜란드 대법원은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25% 감축하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 이후, 기후소송은 단순히 상징적인 행위가 아니라 실제 정부에 책임을 묻는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충무로의 한 극장에서 우르헨다 소송을 진행한 로저 콕스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기후재판’이 상영됐습니다. 콕스는 네덜란드 정부뿐만 아니라 석유 등 에너지 기업인 ‘쉘’을 상대로 한 기후소송도 진행했습니다. 쉘은 정부도 아닌 기업이, 그것도 많은 기업 중에서 왜 하필 자신들만 책임을 져야 하냐며 맞섰지요. 2021년 네덜란드 법원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 줄이라’고 명령합니다. 쉘은 항소로 맞섰습니다.
콕스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기후소송 1.0이 정부, 2.0이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젠 기업 이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3.0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업들이 항소하며 시간을 끌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이사들을 직접 겨냥해야 한다는 것이죠. 콕스가 담당한 소송은 아니지만, 실제로 올해 2월 영국에서 쉘의 이사 11명을 상대로 기후소송이 제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2020년 3월13일, 청소년기후행동이 국내 첫 기후소송(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4건의 기후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2021년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에서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5% 이상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하고, 2030년까지 40%를 감축하기로 확정했는데, ‘이런 미흡한 목표가 시민과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게 이유입니다.
이날 다큐멘터리 상영 뒤 한국에서 기후소송을 진행 중인 청구인들과 변호사들이 관객들과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이 자리에선 기대와 걱정이 공존했습니다. 최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2030년 이후로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미루는 것은 청소년 자유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될 수밖에 없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에 고무된 분위기였습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12일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은 ‘미래세대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재에 위헌 의견을 내기로 결정한 것도 한몫한 듯 했습니다.
윤세종 변호사는 “독일 소송이 우리랑 내용, 주장하는 권리, 무엇이 문제라는 것까지 다 똑같다”며 승리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독일과 우리나라 헌재는 서로 참고를 많이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이병주 변호사도 “올해 연말 또는 내년 초 정도 (헌재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며 “네덜란드에서 돌파하고, 독일에서 커다란 깃발을 세웠다. 한국에서 위헌 결정이 나오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또 다른 깃발이 올라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한다고 해도, 당장 세상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의 한 활동가는 “독일이나 네덜란드 경우에는 사법부의 판결을 행정부가 받아 정책에도 반영했지만, 벨기에 같은 곳에서는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독일 정부는 헌재 결정 이후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대 대비 55%에서 65%로 높였는데, 지금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40%도 버겁다며, 이를 만들어놓은 전 정부 탓을 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그렇게 하겠느냐는 것이죠.
과연 내년 6월에 나올 ‘기후소송 글로벌 트렌드 2024’에 제대로 된 ‘아시아 최초의 깃발 소식’이 담길 수 있을까요?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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