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광' 세 보석이 꿰이는 날, 수도권 청년도 부러워한다
편집자주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전국 청년 취업자의 57.1%가 수도권에 모여 있다. 이런 편중 탓에 떠날 마음이 없던 비수도권 청년들마저 고향과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다.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비수도권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청년에게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직접 물어보고,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미시적 근거를 찾아 격주로 비수도권 지역을 한 곳씩 분석해 게재한다.
여수 순천 광양은 저마다 뚜렷한 매력을 지닌 전남 남해안 이웃 도시들이다. 우선 여수는 석유화학 산업단지를 필두로 탄탄한 산업을 갖춰 전남의 지역내총생산(GRDP)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부유한 도시다. 하지만 이곳 역시 2000년 32만 명이던 인구가 꾸준히 감소해 현재 27만 명까지 줄었다. 반면 여수 북쪽에 맞닿아 있는 순천은 교육·쇼핑 등 주거환경이 잘 갖춰져 있어 여수 광양의 산업단지 근무자들의 주거지역 역할을 하고 있다. 인구도 2019년 여수를 역전해 전남 내 인구 1위이다. 순천의 동쪽에 인접해 있고, 여수에서도 30km 남짓 거리에 있는 광양은 1980년대 후반 포스코 제철소가 들어선 이후 성장한 인구 15만 명의 신흥도시다. 소득 면에서 여수에 이어 2위의 도시지만 생활 시설은 주로 순천에 의지하고 있다. 2013년 이순신대교와 묘도대교 개통 후 여수와의 거리도 크게 줄었다.
여수 순천 광양 결합하면 수도권 버금
이 세 도시를 동시에 분석하는 것은 각 도시의 장점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면 수도권만큼 청년들이 살고 싶은 도시가 될 잠재력을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ISDS가 통계자료 및 국민민원데이터 등 다각적인 자료를 분석해 지역 간 비교를 가능하게 만든 ‘안심’과 ‘만족’ 지표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안심’ 지표는 기본적인 삶의 영위에 있어 꼭 필요한 조건으로 일자리, 안전, 자연환경, 의료 분야를 포함했다. ‘만족’ 지표에는 공연장, 도서관, 박물관 같은 문화기반시설, 교육 관련한 사교육기관 및 업체, 백화점 및 대형마트 등의 대규모 점포, 스타벅스와 올리브영 같은 생활 어메니티(amenity)를 포함했다.
이 지표로 세 도시를 비교한 결과 일자리는 여수 광양이 서울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의료 편의시설 학원 치안은 순천이 잘 갖춰져 있고, 문화 기반 시설은 여수가 월등했다. 일자리, 편의시설, 대형상점, 치안, 학원, 문화기반 시설, 의료 인프라 등 7가지 안심과 만족 지표 구성 요소들을 고려할 때 여수 순천 광양이 결합하면 이미 서울에 버금가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자리 지표(지역별 일자리/노동 가능 인구)는 광양 0.88, 여수 0.81로 서울(0.93)만큼 양호하다. 순천은 0.57로 뒤처지지만, 여수 광양 직장인의 배후도시 역할이 활성화한다면 일자리가 늘어날 환경과 잠재력이 있다. 인구 대비 소아청소년과 비율로 측정한 의료 서비스에선 순천이 0.64로 서울(0.79)보다는 다소 낮았지만, 세 도시 중 가장 양호했다. 인구당 대형 쇼핑몰 수에서는 순천이 오히려 서울을 앞섰다. 치안 관련 지표는 여수 순천 모두 0.7로 서울(0.4)보다 월등히 안전하다. 여기에 수도권보다 훨씬 저렴한 주거비와 쾌적한 환경 등까지 고려할 때 만일 여수 순천 광양(이하 여순광)이 결합한다면 젊은이들에게 오히려 수도권보다 한결 나은 삶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기득권 다툼이 ‘여순광’ 세 보석 연결 걸림돌
여순광 이 세 보석을 꿰어 연결한다면 언제든 실현될 일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순천에서 만난 청년들은 여순광의 결합 필요성은 동의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모두 회의적이었다. “통합되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해 젊은이들이 설 자리가 많아질 거로 생각하지만, 지역에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우선 정치적으로 국회의원 선거구 문제가 민감하다.” “여수와의 통합은 순천에 부담이 돼. 순천 정치인들은 최근에 우주 산업이 시작된 고흥과의 결합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다.” “여수나 광양의 전시 공간을 대여하려면, 자기 지역 활동가들에게 우선권을 주려는 지자체의 비협조를 경험하게 된다. 차라리 작더라도 순천에서만 활동하게 되는 이유다.”
여순광의 결합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오랜 기간 유지돼 온 기득권 문제이다. 당장 내년 실시될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부터 순천과 여수를 떼어 놓는 것을 전제로 진행되고 있다. 세 지역의 통합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는 이미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2007년에는 3개 시가 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하며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듯했지만,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지리적으로 중간에 위치해 있고 인구도 많은 순천을 제외한 여수와 광양은 부정적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기성세대 반목과는 상관없이 세 지역이 기능을 분담하고 교류가 늘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추세로 확인된다. 우선 여수의 차량 데이터를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광양 방면으로의 이동이 300만, 순천 방면이 1,000만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시간대별로도 출근 시간에는 여수 방면 유입이 많고, 퇴근 시간에는 유출이 많아 순천은 이미 여수의 주거 단지 역할을 맡고 있다. 대중교통망도 순천을 중심으로 각각 여수와 광양 간 연결 편이 많았지만, 여수와 광양 간 노선은 부족한 편이다. 양 지역을 연결하는 묘도대교가 개통됐지만 현재는 하루 두 차례의 버스 운행만 있을 뿐이다.
교통수단 발달로 인한 심리적 거리 단축 속도와 각각 갖추고 있는 뚜렷한 기능들을 하루라도 빨리 유기적으로 결합하려는 노력과 투자가 시급하다. 이것 말고는 이 지역 청년들의 실종을 막을 다른 대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조사를 주관한 포스텍 배영 교수는 “세 지역의 역량과 자원을 기능적·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치는 청년들이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협력하고 성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면 여순광은 지역 활성화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매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료 정리: 신호정, 이지인, 이효진(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 전공)
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역전세' 급한 불 끈 대출완화... "갭투자 구제" 잘못 신호 줄 수도
- 이혜영 "미국 명문대 졸업한 딸, 비욘세 남편 소속사 입사" ('옥문아')
- 하루 사이에 두 배 늘어난 '유령 영아' 사건… 15명은 이미 숨져
- ‘돈가스 3kg, 85명’ 어린이집 논란 한 달... 세종시, 대체 원장 투입
- 이준호, 열애설 수혜 입었나…드라마 배우 화제성 1위 석권
- 전문가 "방류 뒷받침하는 기술적 데이터... 딴지 걸긴 더 어려워졌다"
- [단독] 尹장모가 이긴 소송...심판원, 왜 세금 적법하다 봤나
- "중앙지검입니다"… 피싱 고전수법에 청년들 가장 많이 당한다
- 여성 일자리 씨 말린 탈레반 "미용실 문도 닫아라"
-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보관 못하면 뜯겨 사라지는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