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 폭파 다음은 자포리자 원전? 우크라·러, 서로 “적군 공격 임박” 주장
러 “우크라, 5일 밤 원전에 ‘더티밤’ 투하 계획”
‘원전 공격’ 주장 속 자포리자 원전 주력전선 끊겨
IAEA “전력 공급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어”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가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의혹이 거듭 제기되면서 방사능 유출 등 ‘핵 재앙’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자포리자 원전 인근 카호우카댐 폭파를 두고 상대방의 책임을 주장했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이번에도 상대방이 원전을 공격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맞섰다. 이런 가운데 원전 안전과 직결된 주력 전선이 끊기는 사고가 발생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4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점령군이 자포리자 원전에서 위험한 도발을 준비하고 있다”며 러시아군의 원전 공격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이 문제에 대해 통화했다며 “우리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함께 상황을 최대한 통제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앞서 우크라이나군은 성명을 통해 러시아군이 이날 자포리자 원전 원자로 6기 중 3번과 4번 원자로 지붕에 폭파 장치를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은 가까운 미래에 공격이 이뤄질 수 있다며 “이 경우 원자로에 손상을 가하지는 못하겠지만, 우크라이나 측이 포격을 가한 것 같은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자포리자 원전 공격이 임박했다는 의혹을 수차례 제기한 바 있다.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인 군사정보국은 러시아군이 원자로 6기 가운데 4기에 폭발물을 설치했으며, 우크라이나에 사고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위장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https://www.khan.co.kr/world/europe-russia/article/202307022048001
반면 러시아 측은 오히려 우크라이나군이 방사성 폐기물을 채운 이른바 ‘더티밤(dirty bomb)’을 자포리자 원전에 투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맞섰다. 더티밤은 재래식 폭탄에 방사성 물질을 결합한 무기로, 핵폭탄과 같은 파괴적인 위력은 없지만 기폭 시 광범위한 지역에 방사능 오염을 초래할 수 있다.
자포리자 원전을 접수한 러시아의 원전 운영사 로스에네르고아톰의 고문 레나트 카르차는 “7월5일 밤 우크라이나군이 장사정 정밀 무기와 자폭 드론을 이용해 자포리자 원전 공격을 시도할 것”이라며 이 같이 주장했다.
러시아는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가 더티밤을 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고, 이에 IAEA가 조사에 나섰으나 의심 지역에서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상대방이 원전을 공격하려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양측 모두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달 자포리자 원전 인근 카호우카댐이 폭파된 데다 최근 양측이 상대방의 원전 공격 의혹을 거듭 제기하는 상황에서 기간 시설을 대상으로 한 테러 공격이 다시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댐 파괴 후 원전 냉각수를 공급하는 저수지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원전 사고 우려도 커진 상태다.
양측의 비방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IAEA는 이날 자포리자 원전의 주력 전선이 끊기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IAEA에 따르면 자포리자 원전에 연결된 750킬로볼트(kV) 고압 전력선 4개 중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1개를 통한 전력 공급이 이날 오전 1시21분 끊겼다. 이에 따라 지난 1일 막 복구한 330kV짜리 보조 전력선 하나에 전력 공급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됐다. IAEA는 “당장 무엇 때문에 전력 공급이 끊겼는지, 얼마나 이 상황이 지속될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유럽 최대 규모의 자포리자 원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해 3월 러시아에 점령됐다. 이 원전은 지난해 9월 원자로 6기 모두 100도 미만의 상태로 유지되는 ‘냉온 정지’로 전환돼 현재는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 전력을 공급 받아야만 연료봉을 식히기 위한 냉각수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핵 재앙에 대한 공포가 커지면서 IAEA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러시아의 자포리자 원전 점령 후 세 차례 원전을 방문해 원전 일대의 비무장화 등 사고를 막기 위한 협상을 시도했지만 이렇다 할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이날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그로시 사무총장이 즉시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면 자포리자의 모든 재난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IAEA의 접근 방식이 오락가락한다”고 비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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