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최임 괴담'…380원 오르면 6만9000개 일자리 사라져?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livewithall@naver.com)]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의 새 연재 '경제뉴스N시선'을 시작합니다. 매일 쏟아지는 경제 관련 뉴스 중 잘못 보도되는 것, 전체를 보여주지 않고 부분만 보여주는 것, 중요성에 비해 너무 적게 이야기되는 것을 찾아 소개합니다. 뉴스에서 출발해서 분석과 주장으로 끝날 예정입니다. 독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를 희망합니다. 편집자.
내년 최저임금 24.7% 올리면 19만명 '나홀로 사장님' 된다(23.06.07 한국경제)
사장들 최저임금 또 오르면 직원 자른다는데…알바생 "최소 시간당 1만 648원 돼야"(23.07.01 서울경제)
"자영업자 月 100만원 벌 때… 알바생은 月 200만원 번다"(23.06.26 서울신문)
최저임금 1만원?…"지금도 빚내 월급 줘" 대출 1000조 자영업자(23.07.02 머니투데이)
자영업자 연체율 8년만에 최고..."최저임금 1만원땐 일자리 6.9만개 감소"(23.06.27 TV조선)
일자리 하나가 아쉬운데... 최저임금 노동계 요구대로 가면 무려(23.06.26 매일경제)
올해도 어김없이 이런 기사들이 쏟아진다. 자영업자의 어려움도 최저임금 탓이고, 일자리 감소도 최저임금 탓이라고 한다. 자영업자보다 알바생이 더 많이 벌고 있는데, 최저임금이 더 오르면 그 알바생의 일자리가 없어질 거라고도 한다. 최저임금 결정 시일을 앞두고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기사들이 나오는 거야 매년 있던 일이지만, 올해는 자영업자 부채와 연체율이라는 키워드가 추가됐다.
'최저임금 인상=고용 감소'라는 단순 논리
최저임금이 오르면 자영업자가 고용을 줄인다는 단순한 논리는 한국 사회에서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 논리는 저임금 노동자에게 '당신의 일자리가 없어진다, 그래도 최저임금을 올려달라고 할래?'라고 협박한다. 올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보고서에도 어김없이 이 논리가 등장했다. 전경련은 '최저임금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올해 9620원인 최저임금이 380원(3.95%) 인상되어 내년에 1만 원이 되면 최소 2만8000개, 최대 6만9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간 일자리 감소율을 그해 최저임금 변화율로 나눠서 얻은 결과라고 한다. 보고서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영세 기업이 경영난에 처해 저소득층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예측한다.
그럴 수도 있다. 일자리 증감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최저임금밖에 없다면. 그러나 실제로는 일자리 증감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변수들이 많다. 국내 기업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 원청 대기업과 하청의 수직적 관계, 중소·중견기업의 고용 창출 여력 부족, 일자리와 구직자의 미스매치 등을 모두 고려해야 일자리 감소에 관한 온전한 그림이 나올 것이다. 어떤 일자리가 감소하고 어떤 일자리가 증가하는지도 같이 논의해야 한다. 최근 5년간의 동향을 보면 '양질의 일자리' 비중이 큰 제조업 부문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연령별로는 30대와 40대의 일자리가 많이 감소했다. 20대와 60대 이상 일자리는 늘어났다. 노인 공공일자리, 청년 인턴 등의 이름으로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단기성 저임금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냈다. 주휴수당 지급 의무 등을 피하기 위해 일자리를 잘게 쪼갠 초단시간 일자리도 급증했다. 이처럼 일자리 문제는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전경련의 보고서처럼 기계적으로 일자리 감소율을 최저임금 인상률로 나눈 수치를 가지고 일자리 문제를 논할 경우 왜곡은 필연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시기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액면 그대로 계산에 포함한 것도 무리가 있다. 최저임금 액수 자체는 올렸지만 재계의 저항을 의식해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했기 때문에 실제 기업의 부담은 그만큼 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되면 자영업자 대란 일어난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자영업자들이 바로 고용을 줄인다는 공식도 항상 성립하는 건 아니다. 이미 대다수 사업장은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만 고용하고 있다. 편의점업이나 숙박·음식점업의 경우 점주가 24시간 일할 수 없기 때문에 고용원을 둔다.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해서 2명으로 돌아가던 사업장의 고용을 줄여 1명으로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경제신문들은 "최저임금이 380원 오르면 6만9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전경련 보고서 내용을 검증도 없이 반복 보도한다.
한국은 본래 '나홀로 사장님'이 많다. 통계청의 2022년 8월 '비임금근로 및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토대로 계산하면 전체 자영업자 중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비율은 76.2퍼센트(%)에 이른다(무급가족종사자는 자영업자로 치지 않음). 4명 중 3명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라는 이야기가 된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이 인상되더라도 추가 부담이 없다.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자의 주머니에 들어온 돈이 내수 소비로 연결되면 이런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어느 민간 연구원은 "내년 최저임금이 노동계의 요구대로 24.7% 오를 경우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19만 명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로 전락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경제>, <서울경제> 등 여러 언론이 그 보고서의 내용을 보도하면서 '19만 명'을 강조했다. 19만 명이라니, 정말 큰일이 날 것만 같다. 그러나 자영업자 통계는 일자리 문제와 마찬가지로 신중한 접근을 요구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 다수가 통계상 자영업자로 잡히기 때문이다. 통계상의 '운수 및 창고업 종사자'인 배달 라이더에게 고용원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그래서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늘어났다.
팬데믹 기간에 배달 라이더가 늘어난 것은 최저임금 인상과 별 관련이 없다. 건설업이 호황일 때 건설기계를 다루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늘어났다면 그것 역시 최저임금 인상과 무관하다. 따라서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의 증가는 최저임금 인상 반대론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되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행히 <경향신문>과 <노컷뉴스>에서는 기자들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
자영업자 문제 해결은 다른 정책으로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알바생보다 적게 버는 자영업자들도 실제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을 낮게 묶어놓는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싼 임대료, 가파르게 인상된 대출금리, 프랜차이즈의 불공정 계약 문제, 자영업자끼리의 과당 경쟁 등 자영업자가 최저임금조차 지급하기 어려운 진짜 원인을 해결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TV조선의 '자영업자 연체율 8년만에 최고...최저임금 1만 원 땐 일자리 6.9만개 감소'라는 기사를 보자. 자영업자 연체율과 최저임금을 연결한 것이 억지스럽다. 그런데 기사의 인터뷰 내용은 제목과 다른 답을 가리킨다. TV조선이 인터뷰한 A씨는 코로나 사태로 영업이 힘들어져 지난 3년간 3곳에서 대출을 받은 카페 사장이다. 그는 "고금리만 아니었어도 지금 월 지출 100만 원 정도가 세이브됐을 텐데 금리가 오르는 바람에 진짜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요식업종 사장이라는 B씨도 대출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둘 다 최저임금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TV조선은 왜 고금리 시기에 이자 장사로 역대급 이익을 얻는 금융기관을 탓하지 않는가? 만약 카페 사장 A씨가 이자 월 100만 원을 덜 내게 해줄 방법이 있다면 직원의 임금을 올려주고도 남을 것이다. 고정비용인 임대료는 또 어떤가? 아마도 A씨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에 대출받은 돈으로 제일 먼저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송금했을 것이다.
A씨 같은 자영업자들의 상당수는 과거에 노동자였다가 퇴직한 사람들이다. 그런 자영업자들과 최저임금 노동자의 이해관계 대립을 억지로 만드는 기사는 그만 보고 싶다. 자영업자가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면 최저임금 노동자들 역시 숨넘어가게 힘들다. 통계청의 '2023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소득 1분위와 2분위 계층의 실질임금이 각각 1.5%와 2.4% 상승하는 동안 소득이 낮은 4분위, 5분위 계층의 실질임금은 줄어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4분위와 5분위에 물가 상승의 타격이 집중되고 있다. 라면값을 50원 낮춰서 이들의 생활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끌어올리면서 자영업자의 대출이자나 임대료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했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livewith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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