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해방감, 그리고 핵실험…'비키니' 탄생 비화[뉴스속오늘]

김성휘 기자 2023. 7. 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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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비키니 수영복 일러스트/사진=게티이미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1년 후인 1946년 7월 5일. 프랑스 파리의 몰리토 수영장에 모인 1만여명이 충격에 빠진다. 지금의 패션쇼 격인 수영복 대회에 한 여성 모델이 배와 등, 허벅지를 과감하게 드러낸 수영복을 입고 나타났다.
당시에도 상의와 하의를 분리한 투피스 수영복이 있었지만 이렇게 작은 천만 사용해 신체 대부분을 노출한 디자인은 파격을 넘어 충격이었다. 현대적 의미의 비키니 수영복이 등장한 것이다.
전쟁에 옷감 아끼던 수영복→전후 해방감 반영
19세기~20세기 초만 해도 수영복은 요즘과 달랐다. 투피스는 있었지만 짧은 상의와 짧은 반바지였다. 1940년대 수영복은 점차 작아졌다. 신체 노출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서가 아니다. 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 때문이다.

제2차 대전이 터지자 각국은 엄청난 양의 직물과 고무 등을 전쟁물자로 썼다. 미국에서도 1942년 여성 수영복에 들어가는 직물 양을 기존보다 10% 줄이도록 하는 규정을 발표할 정도였다.

이에 따라 의류 업체들은 수영복 부착물을 빼거나 원단을 적게 써서 허리를 더 많이 드러내는 수영복을 만든다. 물론 전쟁 시기 한가롭게 바닷가에서 수영하는 일은 사람들의 관심 밖이어서 수영복 수요가 감소하기는 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1946년 여름이 되자 미국과 유럽엔 해방감이 넘친다. 몇 년 만에 즐기는 평화로운 휴가철인가. 이런 분위기 속에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수영복을 고안하게 된다.

마침 서로 다른 두 디자이너가 거의 같은 시기 비키니 형태 수영복을 제안한다. 시기상 자크 하임이 먼저였고 곧이어 루이 레아르가 비슷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제주시 한림읍 협재해수욕장을 찾은 나들이객들이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23.06.19.
"이렇게 작아요" vs "부도덕해"
대중적 관심이 폭발한 건 레아르 쪽이었다. 7월5일 수영복대회에 등장한 게 바로 레아르의 작품이다.

두 사람 모두 원자폭탄과 관련된 이름을 붙인 것도 흥미롭다. 레아르는 이 수영복을 비키니라고 불렀다. 바로 나흘 전인 7월1일, 미국이 태평양 비키니에서 핵폭발 실험을 한 영향이다.

전세계 시선이 원자폭탄 실험에 쏠려 당시 신문 뉴스는 온통 비키니 얘기였다고 한다. 레아르는 자신의 수영복 디자인도 그렇게 화제를 모으길 기대한 걸로 평가된다.

경쟁 디자이너였던 하임 역시 자신의 디자인을 '아톰'(원자)이라고 불렀다. 원자폭탄 실험에서 착안했고 원자만큼 옷이 작다는 의미를 더했다.

수영복 부피가 작다는 건 레아르의 '비키니'도 특징으로 내세웠다. 당시 모델은 손에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5㎝ 정도인 작은 상자를 들었다. 자신이 입은 수영복을 접으면 그곳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포항=뉴스1) 최창호 기자 = 경북 포항시 북구 영일대해수욕장에서 비키니 차림의 외국인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20.7.5/뉴스1
등장한 지 77년…패션 아이콘으로
비키니는 즉각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호의적인 쪽은 눈에 확 띄는 화면을 원하는 사진 및 영상 매체들이었다고 한다. 반면 로마 교황청은 부도덕하다고 비난했다.

가톨릭 영향이 큰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은 이 수영복을 금지했다. 한편 공산주의 소련은 퇴폐적 자본주의의 사례라며 비키니 디자인을 비판했다.

이처럼 비키니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레아르의 기대처럼 '폭발'했다. 그러나 그가 큰돈은 벌지 못한 걸로 보인다. 일반인들이 허벅지 윗부분과 배꼽, 등허리를 전부 드러내고 수영한다는 건 당시만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7월5일 행사에도 아무도 모델로 나서지 않았다. 이에 레아르는 스트립 댄스를 추는 카바레 댄서를 기용했다. 당시 18세이던 미셸린 베르나르디니가 그 주인공이다.

비키니는 1950년대를 거치며 서서히 확산했고 1960년대 이후 대중화됐다. 비키니는 이상하고 "부도덕한" 일이 아니라 당당한 패션 아이콘이 됐다. 물론 그 이름에 담긴 '핵실험'이라는 역사의 그림자는 그대로다.

김성휘 기자 sunny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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