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독립 유지하려면 예산 편성권 가져야"

한국법제연구원, 제56회 입법정책포럼
안철상 대법관 "사법정책 실질적 결정권이 행정부나 입법부에 좌우되기도"

발제하고 있는 안철상(66) 대법관

[파이낸셜뉴스] 사법부의 예산안 편성권과 법률안 제출권을 인정해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법제연구원(원장 한영수)은 5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사법권의 독립과 입법 정책’을 주제로 제56회 입법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안철상(66, 사업연수원 15기) 대법관은 사법정책 상당 부분이 '예산과 입법'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사법부는 예산안 편성권과 법률안 제출권이 없는 탓에 시의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거나 계획적인 사법정책을 수립해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며 "극단적으로는 사법정책의 실질적 결정권이나 그 효과가 행정부나 입법부에 의해 좌우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상 국가 예산안은 정부가 편성, 제출하고 이를 국회가 심의 확정한다. 법원을 비롯한 독립기관의 세출예산 요구액을 감액하고자 할 땐, 독립기관장의 의견을 듣고 이를 국회에 제출해야 하지만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예산안의 실질적 결정권 행사엔 행정부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안 대법관은 이에 대해 "사법정책의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정부가 갖는 효과를 낳게 된다"며 "궁극적으로는 사법권 독립이 침해되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예산 편성 과정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헌법 개정을 통해 사법부에 예산안 편성권을 부여하는 방안 △현행법을 그대로 인정하되 사법부의 예산안이 행정부에 의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심의될 수 있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제도화 등을 제시했다.

정부와 달리 사법부가 법률안을 제출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법원이 사법정책을 펴나가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어렵고 법원 관련 입법에서 당사자의 참여가 어렵다 보니 입법 목적 달성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안 대법관은 이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헌법 개정을 통해 법원에 소관 사항에 관한 법률안 제출권을 부여하는 방안 △사법부가 소관 사항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송부하면 국회에서 필수적으로 심의를 하게 하는 방법 등을 들었다.

그는 "사법은 갈등 해결과 권리보호에 있어 최후의 보루"라며 "사법권의 독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법제연구원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입법 성과를 공유하고 새로운 입법과제를 발굴하는 자리로 입법정책포럼을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