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러, 147억 물어내라”…칼 빼든 美, 韓선 사람도 기업도 ‘죽을 맛’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3. 7. 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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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왜곡 악플에 극단적 선택까지
美법원 “악플러, 147억 물어내라”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필요성↑
악플이 일으키는 사회적 폐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왼쪽은 파울 요제프 괴벨스 [사진출처=연합뉴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 하면 결국 믿게 된다”

거짓·왜곡 정보 확산에 악용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폐해를 지적할 때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다.

진위논란이 있지만 독일 나치 악행에 앞장선 ‘선전·선동의 악마’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말로 알려졌다.

프로파간다는 주로 선전과 선동을 필요악처럼 여기는 정치 영역에서 활개를 쳤다. 요즘은 정치(인) 영역을 넘어 일상생활로 파고들었다.

덩달아 죽었던 괴벨스가 부활했다. 한두명이 아니다. 셀 수 없는 괴벨스들이 ‘익명’의 존재로 온라인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공론의 장이 악플러 무대로
‘사이버 괴벨스’의 주 무대는 ‘공론의 장’으로 여겨졌던 댓글란이다. 악의적으로 거짓·왜곡 정보를 퍼트린다.

유명인이 대표적인 피해자다. 의혹이 제기되면 온갖 미확인 정보와 자극적 표현이 가득한 악성 댓글(악플)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조회수가 수익과 연결되는 소셜미디어(SNS)에서도 구독자 눈길을 끌기 위해 ‘아니면 말고’ 식의 악성 허위 정보가 확산된다.

선정적 제목과 내용 짜깁기로 조회수를 올리려는 이들을 교통사고 현장에 경쟁적으로 달려나는 견인차에 비유해 ‘사이버 렉카’(Cyber Wrecke)라고 부른다.

거짓·왜곡 정보는 군중 심리를 자극해 사이버 공간에서 특정인을 집단으로 괴롭히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으로 이어진다. 정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중립 기어’는 소수에 불과하다.

사실 확인없이 확대 재생산된 허위 정보와 집단 괴롭힘에 시달린 당사자는 우울증을 앓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도 극단적 선택을 한 BJ(인터넷 방송인)의 가족도 “(BJ가) 수많은 악플과 루머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토로했다.

요즘엔 유명인 뿐 아니라 일반인도 피해를 입는다. 안타까운 죽음을 알리는 기사에 추도의 글 못지않게 저주로 가득 찬 악플도 넘쳐난다.

지난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 조사에서도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 일반 성인의 사이버폭력 경험률은 65.8%에 달했다.

같은 해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초·중·고교 학생 중 사이버폭력(12.3%) 경험자는 언어폭력(33.6%)과 집단 따돌림(26.0%) 다음으로 많았다.

유명인 및 공인뿐 아니라 일반인 역시 더 이상 인터넷 악플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악플 때문에 기업도 망할라
사람 죽이는 악플은 기업도 망하게 한다. 악성 허위 정보나 미확인 정보가 여과 없는 확산하면 해당 기업은 회복 불가능한 치명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유명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의 감자튀김 이물질 의혹 사건은 대표적 사례다. 지난 2월 초 한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감자튀김에서 동물 다리가 나왔다’는 글이 게재됐다. 검은색 물체를 튀긴 듯한 사진은 “쥐 실험을 해봐서 보자마자 쥐 다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일방적인 추정성 댓글이 달리면서 일파만파 확산했다.

당시 업체 측은 “감자에 튀김 옷을 입히지 않는다”며 법적 대응 등 강력 조치를 예고했다. 사태는 게시글 게재 2주 만에 식약처가 “해당 물질은 감자가 튀겨진 것”이라는 공식 분석 결과를 내놓으면서 일단락됐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악의적으로 왜곡된 정보들까지 일부 소비자 사이에서 쉽게 확산하고 있지만, 기업이 인터넷의 빠른 콘텐츠 유통 속도를 쫓아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허위 정보임을 입증한 뒤에도 게시글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허탈해 했다.

악플 피해는 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 2016년 A사는 현대자동차가 자신들의 기술을 탈취했다고 주장하며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차는 기술 탈취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사법부는 1심과 항소심, 상고심에서 모두 현대차 손을 들어줬다. 기술 탈취 등 부당한 행위는 없었다는 취지였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현대차는 ‘협력업체는 안중에 없느냐’ 등 근거없는 비방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기술 탈취 의혹은 벗었지만, 악성 댓글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작성자 중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거짓·왜곡 정보는 ‘돈 벌이’ 수단이 되기도 했다. 1건 당 1000원을 받고 저질 제품을 ‘최고’라며 홍보해준 전문대행사가 적발되기도 했다.

댓글 알바를 고용해 경쟁 입시교육업체와 강사를 비난하는 댓글 20만여건을 올리도록 한 유명 입시교육업체 대표 및 강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국민 10명 중 8명, 악플 규제 ‘찬성’
악성댓글 자료 사진.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거짓·왜곡 정보와 악플로 사회적 폐해가 심각한 상태지만 예방을 위한 규제와 처벌은 미미하다.

형법 제314조에 따르면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 등으로 업무를 방해했다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악성 댓글에 악의적 허위 사실이 포함됐다면 정보통신망법 상 명예훼손으로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도 받을 수 있다.

징역형까지 가능한 법 규정과 달리 실제로는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 불특정 다수인 댓글 작성자를 일일이 특정하기도 어렵고, 찾아내더라도 200만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범의 경우 기소유예 처분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단순 일회성 댓글의 경우 사실상 처벌이 어렵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이 악성 댓글 규제에 찬성하고 있다. 악성 댓글로 발생하는 사회적 폐해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는 뜻이다.

규제 방식으로는 민·형사상 처벌 수위 강화가 꼽힌다. 현재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회적 불안감과 혼란을 야기하는 정보에 대해 삭제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단, 모호한 기준 및 인력 부족 등으로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다.

한국선 ‘솜방망이 처벌’ 지적
악성 댓글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재발 방지를 위한 경고 효과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현실적 규제 방안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시행중이다. 미국 플로리다 법원은 문제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 알선 사업을 하던 한 시민에 대해 ‘사기꾼’이라는 악플을 단 여성에게 1130만달러(147억원) 배상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21년 고의적 허위 또는 불법정보 작성자에게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난 몇 년간 댓글 범죄가 치밀하게 전문화하고 일상화된 상황에서 기존의 처벌 체계로는 제대로 된 예방이 어렵다”며 “악플 해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미국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같은 해결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짓·왜곡 정보를 확산시키는 악플은 사람도 죽이고 기업도 망하게 한다. 단란한 가정을 파괴한다. 표현의 자유는 사람 죽이고 기업을 망하게 하는 ‘악플의 자유’가 아니다. 말과 글에는 책임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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