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판결문] 윤석열 대통령이 봐야할 고대영 전 KBS사장 해임처분 취소소송 판결
'고대영 사장 해임 정당' 1심 뒤집은 고법 판결문
KBS 사장 해임 기준 엄격하게 판단 "독립성 위해"
지난달 말 대법서 '고대영 해임은 위법' 판결 확정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원고 : 고대영 전 KBS 사장.
피고 : 대통령.
사건 : 해임처분 취소소송.
주문 : 法 “1심 판결을 취소한다. 대통령이 2018년 1월23일 고대영에게 한 KBS 사장 해임처분을 취소한다.”
선고일 : 2023년 2월9일.(이후 같은 해 6월29일 대법서 확정)
2심 재판부 : 서울고법 제3행정부(재판장 함상훈, 권순열, 표현덕)
지난달 29일 '고대영 전 KBS 사장 해임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대법원이 KBS 사장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상고를 기각한 것이다. 2018년 10월 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해임은 적법하다'고 판결했으나 2심인 서울고법은 '해임은 위법하다'며 원심을 뒤집었다. 해임을 취소해달라는 고 전 사장의 청구가 항소심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1985년 KBS 기자로 입사한 고 전 사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1월 KBS 사장에 임명됐다. 임명 전부터 '청와대 낙점' 인사로 꼽히던 그는 KBS 보도 공정성을 바닥으로 추락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KBS 내 개혁·진보 언론인들은 2017년 9월 '고대영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고 그해 12월 당시 강규형 KBS 야권 이사가 법인카드 부당 사용과 KBS 이사 품위 훼손 등 사유로 해임된 뒤 이듬해 1월 KBS 이사회가 고 전 사장 해임제청안을 의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를 재가하며 고 전 사장 해임이 단행됐다.
동아일보 해직 기자 출신인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8월 해임된 뒤 2012년 해임 취소 판결이 확정된 사례서 알 수 있듯 정권교체 때마다 KBS 사장 해임 파동은 반복돼 왔다. 대통령이 KBS 사장을 임명하는 현행법의 맹점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교체되고 1년, 김의철 현 KBS 사장은 윤 정권이 주도하는 'TV수신료 분리징수'라는 악재에 부닥쳤고 설상가상으로 사내 안팎으로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그가 사장직을 고수한다면 물불 가리지 않는 윤 정권이 과거처럼 KBS 사장 강제 해임 절차에 돌입할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고대영 사장 해임을 저지한 서울고법 판결은 여야 모두 반면교사로 삼을 가치가 있다. 법원은 KBS 신뢰도와 영향력 추락, 파업 사태 초래에 대한 고 전 사장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KBS 사장의 독립적 지위를 보장해줘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해임은 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윤 대통령이 입맛에 맞지 않는 KBS 사장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임'한다면, 법원이 다시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
해임 정당성 무너뜨린 민주당 워크숍 문건
KBS 이사회는 2018년 1월22일 ①지상파 재허가 심사 결과 최초로 합격 점수 미달과 조건부 재허가 ②KBS 신뢰도와 영향력 추락 ③파업 사태를 초래하고 이를 해결하지 못해 직무수행능력 상실 ④졸속으로 추진한 조직개편으로 조직 내 반발과 갈등 초래 ⑤방송법 등을 위반한 인사 처분 남발 ⑥상위 직급 과다 운영 등 인력 운영 부적정 ⑦허위 또는 부실 보고로 이사회의 심의·의결권 침해 ⑧기타 개인 비리 의혹 등을 이유로 고 전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안을 의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 해임제청을 받아들였다.
서울고법은 고대영 해임제청안 심의와 의결 과정이 적법하고 정당하게 이뤄졌다고 보지 않았다. 고 전 사장 해임이 가능했던 이유는 방송통신위원회가 2017년 12월 보수 성향의 강규형 KBS 야권 이사에 대해 327만 원 상당의 업무추진비 사적 사용 등을 이유로 해임 건의안을 의결했고, 이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가하고 KBS 여권 이사를 임명하면서 여권 우위의 KBS 이사회가 구성된 데 있다. 강규형 전 이사에 대한 문 대통령의 해임 역시 지난 2021년 9월 대법원에서 위법하다고 확정됐다.
고법 재판부는 해임의 절차적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더불어민주당이 작성한 문건을 문제 삼았다. 민주당 실무진이 2017년 8월 의원 워크숍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회람할 용도로 작성한 보고서로 알려진 문건이다. 여기에는 “MBC·KBS 사장의 발언·성명·기자회견 등에 대해 당이 지속적이고 구체적으로 즉각 대응해야 한다”, “방송사 구성원 중심의 사장·이사장 퇴진 운동 전개”, “방통위의 관리·감독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사장의 경영 비리(공금 사적 유용) 등 부정·불법적 행위 실태를 엄중히 조사해야 한다”, “야당(당시 자유한국당) 측 이사들에 대한 면밀한 검증을 통해 개인 비리 등 부정·비리를 부각시켜 이사직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결과적으로 민주당 문건은 고 전 사장 해임의 정당성을 크게 실추시켰다. 민주당 문건이 적시한대로 KBS 이사·사장 해임 절차가 이뤄져서다. 고법 재판부는 판결문에 문건 내용을 상세히 적시한 뒤 “야당(당시 자유한국당) 성향이었던 강규형 이사를 해임한 것은 KBS 여권 성향 이사들이 원고(고대영) 해임을 제청하기 위해 그 이사회 구성을 변경시킬 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KBS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안을 상정할 의도를 갖고 야권 성향 이사를 부적법하게 해임해 이사회 구성을 변경한 다음 가결된 고대영 해임제청안은 KBS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KBS 이사회를) KBS 경영에 관한 최고의결기관으로 규정한 방송법에 반할 뿐 아니라 이사회의 제청 권한을 우회적으로 잠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법 재판부는 강 전 이사에 대한 해임이 법원 판결을 통해 취소됐다는 점을 들어 “만약 강규형에 대한 위법한 해임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고대영 해임제청안이 가결됐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고대영 해임의 절차적 위법을 지적했다.
“파업 방송 파행, 고대영에게 책임 있지만 그럼에도”
고법 재판부는 고 전 사장 해임 사유(①~⑧) 가운데 ①, ②, ③, ⑤에 대해서는 고 전 사장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이 역시도 KBS 사장의 독립적 지위를 보장해줘야 할 필요성에 비춰보면 해임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해임 처분은 대통령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조처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KBS 이사회는 KBS 신뢰도와 영향력이 추락한 것을 해임 사유로 물었지만 재판부는 “2017년 일부 조사에서 KBS 신뢰도와 영향력이 하락한 사실이 인정되고 KBS 사장인 원고가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기는 하다”면서도 해임에 이를 정도의 사유는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케이블 방송과 종합편성채널의 등장, 모바일 사용 증가, 유튜브 등 채널 다각화로 인해 지상파 방송 시청률과 점유율 하락은 불가피한 면이 있고 이와 같은 시청률과 점유율 변화는 방송 신뢰도 및 영향력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설령 KBS 신뢰도와 영향력이 원고 취임 이후 하락했대도 다수 설문조사에 의하면 JTBC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청와대 국가기밀 등이 최순실에게 유출됐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한 2016년 하반기 이후 JTBC 신뢰도 및 영향력이 크게 상승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KBS 영향력이 하락한 것은 이처럼 다른 방송사 영향력 상승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원고(고대영) 책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된 이후인 2017년 9월 '고대영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고, 한 달 앞서 KBS 기자협회와 PD협회는 제작 거부에 돌입했다. KBS 기자·PD들은 고 전 사장이 일방적으로 조직을 개편했고, 독선 경영으로 구성원 신뢰를 잃었으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도록 부당하게 관여해 KBS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사유로 제작거부와 파업에 나섰다.
이와 관련해 KBS 이사회는 고 전 사장 해임 사유로 '파업 사태를 초래하고 이를 해결하지 못해 직무수행능력 상실'(③해임 사유)을 들었는데 고법 재판부는 “본부노조(언론노조 KBS본부) 등이 약 4개월 동안 파업을 해 방송이 파행적으로 운영된 사실에 원고의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런 사유가 원고가 KBS 사장직에서 해임돼야 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파업의 불법성'을 판단 근거로 들었다. 노동자의 쟁의 행위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그 목적이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노사 간 자치적 교섭 조성'에 있어야 하는데 2017년 파업의 주된 목적인 '고대영 해임'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비록 이 사건 파업에서 '방송법 개정과 공정방송 사수, 단체협약 쟁취' 등 목적을 내세우기는 했으나 파업이 고대영 해임으로 종료된 것에 비춰보면 파업의 주된 목적은 '고대영 해임'이었다고 보이고, 고대영 해임을 제외한 나머지 목적만으로는 파업이 진행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파업이 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는 MBC 파업 재판 등에서 '방송의 공정성 보장은 방송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라고 판결해온 흐름에 역행하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고법 재판부는 KBS 사장 해임 기준을 엄격하게 해석했다. 재판부는 “KBS 사장 임기 제도는 공영방송 독립성, 공정성,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에서 마련한 것이어서 해임 사유에 따른 해임 처분 기준은 다른 공공기관 등과 비교해 볼 때 더 높게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KBS 사장으로서 적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기 만료 전 해임하는 것은 사장으로서 직무수행 능력에 대한 근본적 신뢰 관계가 상실된 경우와 같이 직무수행에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로 제한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혹여 'KBS 사장 해임'이라는 악수를 고민할 정치권이 새겨야 할 판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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