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 인류에 남긴 흔적들…신간 '장미의 문화사'

영국 미술작가가 조명한 다채로운 장미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만일 제우스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우리 가운데 / 꽃 중의 왕을 간택한다면 / 그는 장미를 호명하여 왕의 관을 씌울 것이네"

고대 그리스시대 시인 사포의 시 가운데 일부다. 사포의 묘사처럼 장미는 오랫동안 꽃의 왕, 혹은 꽃의 여왕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꽃이다.

언제부터 장미가 인류와 함께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북반구에 정착했을 무렵에도 인류는 장미를 곁에 두고 있었다.

장미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곳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중국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다. 장미 재배에 대한 최초 기록은 기원전 2천2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 수메르 문명에서 발견됐다.

장미를 경애하는 풍조는 서쪽으로 전파돼 고대 그리스, 로마로 이어졌다. 라틴어 로사(Rosa)는 영어 로즈(rose), 스페인어 로사(rosa), 독일어 로젠(rosen) 등으로 변형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장미는 색깔을 표현하는 데에도 사용됐고, 더 깊게는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활용되기 시작했다.

가령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에서 "장밋빛 손가락과 같은 새벽"이라 묘사하며 장밋빛을 자연에 비유했다. 20세기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는 '장밋빛 인생'을 노래하면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달콤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뿐만 아니다. 장미를 바라보며 사회 개혁가는 삶의 바람직한 모습을(빵과 장미의 파업), 장미 육종가는 돈을,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과학자는 멸종 위기에 처한 생태 서식지를, 작가는 무한한 영감을 떠올렸다.

최근 번역돼 출간된 사이먼 몰리의 '장미의 문화사'(안그라픽스)는 이처럼 장미가 남긴 문화적 족적을 추적한 책이다. 미술작가이자 교육자인 저자는 문학·회화·종교·식물학·정신분석학을 넘나들고,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으며 장미를 주제로 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장미는 인간의 관심이나 가치와 밀접하게 얽혀있다는 점에서 철저히 '인간의 식물'"이라고 말한다.

노윤기 옮김. 370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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