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美 독립기념일…‘총기폭력’ 미국인 최대 골칫거리 [뉴스+]

조성민 2023. 7. 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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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독립기념일 연휴…잇단 총기난사로 최소 10명 사망
미국인들 “총기폭력 인플레·의료·정쟁·약물만큼 문제”
총기 사건 급증에…해군기지도 컨테이너 장벽 둘러쳐

미국 최고 축제기간 중 하나인 독립기념일(7월4일, 현지시간) 연휴에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지난 주말부터 독립기념일인 이날까지 최소 10명이 사망했다.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는 3일 밤 총격으로 5명이 숨졌고, 텍사스 포트워스에서도 같은 날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2일에는 메릴랜드 볼티모어 남부 브루클린 지역에서 총격이 발생해 최소 2명이 숨졌으며, 미시간 랜싱과 캔자스 위치타, 일리노이 시카고 등지에서도 총격 사상자가 나왔다.

바이든 정권은 총기규제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미국 최대 골칫거리인 총기폭력은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새다. 미국 내 총기난사 사건을 수집하는 총기폭력아카이브(GVA)에 따르면 독립기념일인 이날까지 올들어 미국에서는 극단적 선택을 제외하고 총기폭력으로 무려 9567명이 사망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일 성명을 내고 “지난 며칠 우리 국가는 필라델피아에서 포트워스, 볼티모어에서 랜싱, 위치타에서 시카고까지 미국 전역의 공동체에서 일련의 비극적이고 무분별한 총격을 겪었다”라며 “목숨을 잃은 이들을 애도하며, 우리 국가 독립기념일을 맞는 상황에서 우리 공동체가 총기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을 위해 기도한다”라고 말했다.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총기난사가 발생한 지난 2일(현지시간) 주민이 경찰이 현장에 설치한 폴리스라인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총기폭력’ 문제의식 못 따라가는 정치권

반복되는 총기폭력에 문제의식은 높아져가고 있다. 미국 조사전문업체 퓨리서치센터가 지난달 21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들은 인플레이션, 의료 접근성, 정치 갈등, 약물중독, 총기폭력 등을 미국의 ‘매우 큰 문제’로 꼽았다. 다만 집권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공화당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개별 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큰 차이를 보였다. 총기폭력이 ‘매우 큰 문제’라고 답변한 이들의 비중은 민주당 쪽에서 81%였으나 공화당 쪽에서는 38%로 나타났다.

현재 미국의 중대 문제로 많이 지목된 사안의 순위는 인플레이션(65%), 의료 접근성(64%), 공화당과 민주당의 협치 능력(62%), 약물중독(61%), 총기 폭력(60%), 폭력 범죄(59%) 등이었다. 퓨리서치센터는 전반적 추세에 대해 “경제정책, 범죄, 불법 이민에서 공화당에 동의하는 미국인들이 늘고 있지만 민주당은 여러 다른 문제에서 우위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는 이달 5일부터 11일까지 전국에 있는 표본 5115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미국 내에서도 총기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은 높지만, 총기규제로 향하는 걸음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최근 민주당의 ‘잠룡’으로 꼽히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총기규제를 헌법에 명문화하자고 공식적으로 제안했으나, 정치권은 회의적인 모습이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총격 현장에서 경찰이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AP뉴시스
뉴섬 주지사는 “미국의 총기폭력 위기를 종식하기 위해 역사적인 28번째 수정헌법 조항을 제안한다”며 “이 수정 조항은 기존 수정헌법 2조는 그대로 놔둬 미국의 총기 소유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민주당과 공화당, 독립적인 유권자와 총기 소유자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상식적인 총기 안전 조치를 보장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섬 주지사가 제안한 헌법 수정 조항은 총기 구매자에 대한 보편적인 신원 조회를 비롯해 총기 구매 연령을 21세로 올리는 방안과 총기 구매에 대기 기간을 도입하는 방안, 민간인의 공격용 무기(총기 난사에 쓰이는 돌격 소총 등) 구매 금지 등을 담고 있다.

1791년 명문화된 미국의 수정헌법 2조는 ‘규율 있는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 정부의 안보에 필요하며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미국인의 총기 소지 권리를 200년 넘게 보장해 왔다. 이처럼 총기 소유권을 보장한 미국의 헌법 정신과 전통이 워낙 뿌리 깊어 그 자체를 건드리기 어려운 만큼, 부수적인 규제 내용을 담은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헌법을 손보자는 것이 뉴섬 주지사의 제안인 셈이다.

다만 미국에서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려면 상·하원 의원의 각 3분의 2 이상, 또는 33개 주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AP통신은 1992년 이후 미국 헌법이 개정된 적이 없는 만큼, 뉴섬 주지사의 이번 헌법 개정 제안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미국 22개 주는 공화당이 주의회를 주도하고 있다.

◆세계 최강 미 해군도 총기 난사에 떤다

총기 난사에 떠는 것은 시민뿐만이 아니다. 세계 최강으로 불리는 미 해군도 총기 난사 피해를 막기 위해 기지를 빙 둘러 컨테이너 장벽을 설치, 이목이 쏠리고 있다고 미 NBC 방송이 지난달 18일 보도했다. 방송은 이같은 상황을 “미국 사회가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총기폭력으로 멍들고 있는 상황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는 한 단면”이라고 짚었다.
2023년 4월 미국 미시시피주 걸프포트 해군기지의 컨테이너 장벽. 연합뉴스
NBC 방송에 따르면 미시시피주 항구도시 걸프포트에 위치한 미 해군건설대대 기지에는 최근 20여개의 화물 컨테이너로 구성된 방벽이 들어섰다. 이는 작년 가을 인근 임대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기지 내의 주택 5채가 파손된 후 세워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군은 대외적으로 “임시 방편”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걸프포트시도 총기폭력 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군 내부적으로는 영구적인 콘크리트 벽을 세우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높게 세워진 장벽을 두고 지역사회는 착잡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걸프포트의 한 노동 관련 비영리단체를 이끄는 존 휫필드 목사는 “장벽의 실용성은 이해할만하다”면서도 “이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다”고 전했다. 인근 지역의 시민운동가 베티 유잉은 “해군이 군대는 보호하겠지만, 민간인들은 그대로 내버려두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구 7만2000명인 걸프포트는 10년 전만 해도 연간 살인사건 발생이 2∼3건에 그쳤으나, 2019년부터는 10건 이상으로 훌쩍 뛰었다. NBC는 빈곤율이 약 26%에 달하는 이곳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총기폭력이 연관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5일 이곳 해군기지 선적 컨테이너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지역에서 생일파티 도중 벌어진 총격으로 두 명이 부상을 입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에서 또 다른 총기폭력이 발생, 20세 남성이 사망했다. 지난 4월30일에는 임신 중이던 16세 여성이 총에 맞아 숨졌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총기규제’가 거론되는 일은 거의 없다. 보수 성향 공화당이 주도하는 주 정부는 총기를 공공장소에서 숨기지 않고 휴대하도록 허용하는 총기소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빌리 휴이스 시장은 총격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과 예방책이 개인에게 있다는 입장으로, 부모들이 10대 청년들의 총기 사용을 제대로 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모든 것의 해결책을 정부에 의존하면 문제가 된다”며 “내가 경험한 바, 모든 것은 가정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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