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귀', 아는 만큼 보이는 '고스트 월드'

아이즈 ize 조이음(칼럼니스트) 2023. 7. 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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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조이음(칼럼니스트)

사진=SBS '악귀' 방송 영상 캡처

'전설의 고향'은 꽤 오랜 시간, 여름마다 안방극장을 책임졌다.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가 아름다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 마을 사람들의 간을 빼 먹는다(구미호전)거나,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 귀신이 제 마을에 부임한 사또를 찾아가 원혼을 풀어달라 청하는(아랑 전설) 등 전래동화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시청자는 빠져들었다. 

매 회 새로운 '전설'이 펼쳐지지만, 매 회 다른 이야기 속에도 변하지 않는 기조는 깜짝 놀랄 정도의 비주얼로 적재적소에 등장해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캐릭터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누군가의 욕심으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탓에 한이 서려 구천을 떠도는 귀신. 주인공들은 그런 귀신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맺힌 한을 풀어주는 것으로 그들을 천도했다.

이 같은 설정은 지난달 막을 올린 SBS 금토드라마 '악귀'(극본 김은희, 연출 이정림)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귀신보다 인간이, 치열하기만 한 제 삶이 두려운 취준생이자 가장인 구산영(김태리)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고에 할머니 댁을 찾는다. 지금껏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 구강모(진선규)는 산영에게 유품(배씨댕기)를 남기고, 이를 통해 산영은 악귀에 씐다. 한편 강모로부터 딸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은 민속학자 염해상(오정세)은 산영을 찾아와 그에게 씐 악귀의 존재를 설명한다. 해상의 말을 믿지 못하던 산영은 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점차 악귀의 존재를 인지한다.

사진=SBS '악귀' 방송 영상 캡처

산영에게 붙은 악귀는 과거 해상의 눈앞에서 엄마의 목숨을 앗아갔던 존재이자 해상이 민속학자의 길을 걷게 만든 이유. 해상은 악귀가 사람의 욕망을 통해 몸집을 키워간다며 "악귀를 만나면 이름이 뭔지, 왜 여기에 남은 건지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고 일러준다. 이후 악귀의 본채와 마주하기 위한 여정에서 둘은 여러 사건에 얽힌 다양한 악귀를 마주한다.

'악귀' 초반에 등장한 교복 입은 귀신은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 원한으로 남아 저승에 들어가지 못한 영혼이나 그 한으로 인간을 괴롭히는 악령, 원귀(寃鬼)다.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줄 알았지만, 가정폭력을 밝히기 위해 학교 옥상에서 목숨을 던진 정현우(김정철) 이야기다. 현우는 제가 죽으면 집에 찾아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자살한다. 현우가 밝히고자 했던 건 출생신고도 되지 못한 채 부모에게 시달리고 있는 제 동생의 존재. 산영과 해상의 활약으로 현우의 동생이 구출되고, 이를 지켜보던 현우의 원귀는 자취를 감췄다.

사진=SBS '악귀' 방송 영상 캡처

3화에는 죽은 아이를 매달던 덕달이 나무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자살귀(自殺鬼)가 등장했다. 강모의 흔적을 따라가던 산영과 해상은 1958년 장진리에서 벌어진 일들을 주목한다. 이 과정에서 친구 세 명이 연달아 자살하고 자취를 감춘 이태영의 존재를 알게 된다. 태영은 강모가 죽기 전 만났던 사람 중 한 명으로 그를 만나기 위해 두 사람은 태영이 살던 고시텔을 찾지만, 건물 외벽에서 자살귀 그림자만 목격한다. 이후 태영과 친구들 사이에 고리대금업자라는 연결점이 있었음을 눈치챈다. 사채업자로부터 협박을 받던 태영은 가족만은 지키기 위해 사진을 찢어 어항에 버렸고, 사진에 붙었던 자살귀가 어항 물에 흩어진 탓에 그 어항 속 물고기를 선물 받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음이 밝혀진다.

4화에는 배씨댕기에 얽힌 태자귀와 이를 쫓는 의식인 당제, 허제비 놀이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산영과 해상은 1958년 지역 신문에서 '염매를 만든 비정한 무당'이란 제목의 기사를 찾아낸다. 이에 해상은 어린아이를 굶겨 죽여 귀신을 만드는 주술 행위를 뜻하는 염매, 어려서 죽은 귀신을 태자귀라 부른다고 설명한다.

강모가 귀신을 쫓는 대표적 의식인 '백차골 허제비 놀이'에 대해 취재했다는 걸 산영과 해상은 백차골로 향한다.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사람이 여럿 죽어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해상은 집밖이나 객지에서 죽은 사람의 혼령 또는 불행한 죽음(자살‧타살‧수사‧교통사고 등에 의해 죽은 귀신)을 당해 일정한 집에 머물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귀신인 객귀(客鬼)의 소행일 거라고 짐작한다. 객귀를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허제비 놀이가 진행돼야 하는 상황. 하지만 의식을 앞두고 인형이 사라져 소란이 인다. 인형의 흔적을 찾던 해상은 오래전 고향을 떠난 딸이 그리워 허제비 인형을 태워버렸다는 박씨 할머니의 고백을 듣는다.

사진=SBS '악귀' 방송 영상 캡처

'악귀'에는 사건의 중심이 되는 악귀 외에 '신'의 존재가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극 초반 해상의 입을 통해 등장한 측신과 조왕신이 그것. 한 건설 현장을 찾은 해상은 몇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집터를 지켜온 것들로 온화한 성격의 조왕신과 달리 측간(화장실)을 지키는 측신은 공간의 독한 냄새처럼 성질이 매우 포악하고 무서운 귀신이라 설명했다. 특히 측신과 조왕신은 지난달 막을 내린 '구미호뎐1938'에 각각의 캐릭터로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조왕신은 제가 지키던 터에 들어선 미용실을 몰아내기 위해 그곳의 거울을 모두 깨는, 측신은 볼일을 보기 위해 측간을 찾은 사람들의 어깨에 눌러앉거나 제 마음에 드는 사람을 깊은 곳으로 끌어들이는 소동을 벌였다.

우리가 말하는 귀신(鬼神)은 인간에게 화를 내리는 존재(鬼)와 인간에게 복을 주는 존재(神)를 아우른다. 하지만 지금껏 여러 미디어를 통해 남은 강렬한 이미지 탓에 '귀'의 존재만이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확실한 건 '귀'도 '신'도 인간의 욕망과 만나면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2부 중 4부가 방송돼 이제 막 초반 능선을 넘은 '악귀'. 앞으로의 이야기에 또 어떤 귀신이 등장할까. 잊혔던 귀 또는 신에 대해 인지하고, 그들이 품은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도 드라마를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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