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에 공원도 팔아넘기는 나라···아이들은 놀기 위해 담을 넘는다
해변 등 공공장소들 무더기 폐쇄
아이들, 놀이터 들어가려 담 넘어
시민단체, ‘공공장소 되찾기’ 운동
“정부는 아이들이 어디에서 뛰어노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로 꼽히는 카란티나에 사는 아드난 암쉐는 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카란티나에 하나밖에 없는 공원 입구는 굳게 잠겨 있었고,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뾰족한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했다.
2020년 220명의 목숨을 앗아간 베이루트항 창고 폭발 사고 이후 최악의 경제난을 겪는 레바논에선 최근 시민들의 휴식처가 돼야 할 공원과 해변 등 공공장소가 하나씩 폐쇄되기 시작했다. 레바논 정부가 민간 사업자와 결탁해 공공장소 소유권을 팔아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한 시민들은 ‘공공장소 되찾기’ 캠페인을 펼치며 정부에 대항하고 있다.
WP는 이날 “레바논의 줄어드는 공공장소는 치솟는 불평등과 사익 추구의 산물”이라며 “레바논의 부패가 얼마나 악화했는지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2020년 레바논대 연구에 따르면 베이루트엔 1인당 26평방피트(약 2.41㎡)의 사설 주차장이 있다. 반면 녹지 공간은 8.6평방피트(0.78㎡)에 불과한데,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97평방피트(9.01㎡)에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레바논 시민단체들은 베이루트에 있는 주차장 상당수는 공원이었던 부지에 지어졌다고 주장한다. 공공장소 되찾기 운동을 주도하는 시민단체 나누(Nahnoo)의 무함마드 아윱 대표는 “1990년대 친구들과 뛰어놀던 공터가 전부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레바논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해변도 비슷한 처지다. WP에 따르면 서류상 공유지로 등록된 해안가의 80%는 이미 불법으로 세워진 호텔과 리조트가 차지한 상태다. 물론 뒷배는 정부다. 시민들은 해수욕을 마음껏 즐길 수 없게 됐고, 그나마 대중에 개방된 해변으로 가기 위해선 좁고 위험한 길을 통과해야만 한다.
시민단체들은 반격에 나섰다. 사설 주차장 한쪽에 임시 놀이터를 만들거나 버려진 건물을 개조해 공공 쉼터를 조성하는 등의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최근엔 정부가 ‘아부 알리’라는 이름의 해변을 민간에 팔아넘기려 하자 대규모 토지 수탈 반대 서명 운동을 펼쳐 매각 절차를 멈춰 세웠다.
하지만 이러한 시민단체의 노력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이 놀이터와 쉼터를 만들면 어느새 부지 소유권을 주장하는 세력이 나타나 아이들을 내쫓고 시설을 폐쇄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베이루트 아메리카대 건축학과 교수인 나딘 카야트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시민단체가 마련한 임시 공간은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며 “아이들은 점점 그들의 공간을 잃어버리고, 성장을 위한 시간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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