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의 시론]‘탈중국 새판 짜기’ 돌파구 보인다
수교 이후 첫 對중국 무역적자
美·유럽 비중 확대 ‘판도 변화’
중동·베트남, 中 대체 카드로
노벨상 美 학자 “韓에 새 기회”
한일 경협확대 길 터 활력 기대
3대 개혁 관철해 동력 살려야
6월 무역수지가 무려 16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반가운 청신호다. 그렇지만 에너지 등 수입 감소액이 수출 감소액보다 더 커서 생긴 ‘교역규모 축소형’ 흑자다. 반도체 경기 회복 등 변수도 여전히 많다. 무역흑자가 지속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주목할 것은 한국 교역구조의 지각변동이다. 무엇보다 탈중국 가속화가 뚜렷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대중 수출은 올 상반기에 26%나 줄어 지난해 말 22.8%였던 수출 비중이 19.7%로 떨어졌다. 수출감소에도 무역수지는 지난해에 12억 달러 흑자였지만, 올 6월 현재는 129억 달러 적자다. 올 연간으로 1992년 수교 이후 첫 무역적자가 예상된다. 대중 경상수지는 이미 지난해에 적자 전환했다. 한·중 간 경제 패러다임이 31년 만에 대격변하는 중이다. 반면, 미국 유럽 등 자유 우방국에 대한 수출과 무역흑자는 확대 추세다. 대미 수출은 대중 수출과 달리 상반기에도 늘어 수출 비중이 지난해 말 16.1%에서 18.0%로 높아졌다. 대미 무역흑자는 172억 달러로, 지난해(279억 달러)를 추월할 기세다. 대유럽 수출 비중도 15.9%로 지난해(13.3%)를 넘어섰고, 지난해 적자였던 무역수지는 17억 달러 흑자로 전환했다. 방산과 원전이 새 효자 산업으로 떠올라 수출 길을 열어 기여하고 있는 것도 반가운 변화다.
한국의 경제 지형이 탈중국을 화두로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다. ‘포스트 차이나’ 시대의 경제 새판 짜기가 시작된 것이다. 변화를 몰고 온 결정적인 요인은 글로벌 공급망 개편이다. 다행히 기대를 더 키우는 긍정적인 변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유 우방국뿐만 아니다. 베트남과 중동 역시 탈중국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부상했다. 베트남의 경우 교역규모가 이미 일본을 추월해 한국의 3대 교역국으로 도약했다. 대베트남 수출은 글로벌 수출 부진 속에서 올 상반기 22% 줄었지만, 수출 비중은 8.1%로 지난해(8.9%)에 이어 여전히 3위이고, 대베트남 무역흑자는 117억 달러로 미국에 이어 2위다. 한국은 베트남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상생의 경제 관계다. 양국이 얼마 전 정상회담을 통해 교역규모를 2030년까지 지금의 두 배인 1500억 달러로 확대하기로 합의한 것은 서로가 필요한 경협 파트너임을 입증한다. 중동도 2차 붐을 예고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빈 살만 왕세자가 첨단도시 네옴시티 등 40조 원 규모의 투자 보따리를 푼 데 이어, 현대건설이 6조5000억 원 상당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성과가 나오고 있다. 한국이 원전을 처음 수출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이라크 등의 메가 프로젝트도 대기 중이다.
200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엥글 미국 뉴욕대 교수는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한국에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중 수출이 줄어들 수 있지만, 미·중 간 공급망 해체로 중국을 대체하는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서방 국가에 대한 수출 비중이 높아져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지적도 했다.
우리 경제는 실제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새로운 효자 산업과 파트너가 부상하는 것도 긍정적이다. 막혔던 한·일 관계가 풀리며 수출규제가 완전히 해소돼 소재·부품·장비 등에서까지 양국 기업 간 투자 등 협력 확대를 위한 길을 튼 것도 중대한 진전이다. 얼마 전 재무장관 회담에서 통화스와프 협정 재개와 함께 제3국 인프라 프로젝트·공급망 구축 등에서 공조키로 합의한 것은 의미가 크다. 물론 반도체·배터리 등에선 경쟁하지만, 제3국 공동 진출 등 협력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
탈중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끊는 ‘디커플링’이 아니라, 위험을 줄이는 ‘디리스킹’이어야 한다. 30년 넘은 양국 경제 관계를 일시에 단절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충격도 크다. 그렇지만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변화다. 탈중국의 연착륙이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유례없는 도전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새로운 파트너십과 함께 우리 내부의 체질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반드시 관철해야 하는 이유다. 막혔던 것은 뚫고, 새로운 시장·성장 동력도 커지고 있다. 돌파구가 보인다. 아직 낙관할 수 없지만, 이제는 걱정보다 기대가 크다. 총력을 쏟아 새로운 기회를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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