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면 비즈니스, 꿀잠은 돈이다 [박세환의 빡센경제]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적당한 수면시간이 유지되고 수면의 질이 높아야 삶의 질이 올라간다.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건강비결 중 하나는 ‘꿀잠’이었다. 록펠러는 자는 동안 모든 것을 잊고 숙면을 취했다. 사무실에서도 매일 한 시간씩 낮잠을 즐겼다. 덕분에 98세까지 장수했다. 말 그대로 잠이 최고의 보약이었다.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하루평균 10시간이나 잤다고 한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업무 중 또는 전쟁터에서 낮잠으로 에너지 충전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돈키호테’를 쓴 스페인 문학의 거장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수면은 모든 문제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약”이라고 했다.
잠을 잘 자고 나면 다섯 가지가 즐겁다고 한다. 이른바 ‘숙면 5락(樂)’이다. 정신이 맑아지고, 창의력이 향상되며, 생산성이 높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활력까지 얻게 된다.
수면 부족, 상당한 경제적 비용 수반
수면의 질이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수면학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45%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수면 부족은 알츠하이머나 불안, 치매, 고혈압, 당뇨 등과 같은 만성 질환을 유발하며, 인지 기능과 주의력, 심지어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수면시간이 정신건강과도 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윤지은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과 교수와 윤창호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공동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적정 수면시간에 미달하거나 초과할 경우 우울증 발병 위험이 커졌다. 수면시간이 7시간일 때 우울증 발생 위험이 가장 낮았으며, 5시간 미만인 경우 7시간일 때보다 우울증 발병 위험이 최대 3.74배 높았다.
적정 수면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피로가 쌓여 집중력이 떨어지고 노동 현장에서 심각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미국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유조선 ‘엑손발데스호’ 기름 유출 사건 등은 모두 수면 부족으로 인한 담당자 실수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의 수면시간은 산업화와 첨예한 경쟁 속에서 꾸준히 짧아졌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이후 인간은 생산·소비활동시간을 밤늦게까지 연장할 수 있었다. 교대근무제가 도입되고 산업 생산성은 늘어났지만 인간의 수면시간은 지속해서 침해받아 왔다.
수면은 생산성을 좌우하기도 한다. 수면이 사람의 집중력과 창의력, 통찰력, 학습능력 등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회사 업무와 중요 의사결정에 다시 영향을 준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일상생활의 위험이 커진다. 17~19시간 깨어 있을 때 업무역량은 음주 단속 기준을 초과한 혈중알코올농도 0.05%인 상태와 같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거꾸로 10~30분 정도의 짧은 낮잠은 최대 2시간30분까지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글로벌 기업들은 직원 수면관리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한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직원에게 하루 8시간 수면을 권장하고,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수면전문가를 고용해 직원의 수면을 컨설팅해준다. 나이키는 ‘콰이어트 룸(수면실)’을 마련하거나 구글처럼 일과 중 낮잠시간을 따로 정해놓는 곳도 많아졌다.
실제로 수면 부족은 상당한 경제적 비용을 수반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온다. 맥킨지는 2021년 보고서 ‘숙면 : 기술을 통한 수면 부족 감염병 해결(Sleep on it : Addressing the sleep-loss epidemic through technology)’에서 수면 부족은 막대한 경제적 비용을 유발한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독일에선 수면 부족에 따른 경제적 지출이 해마다 600억달러(약 79조1400억원)에 이른다. 호주에서는 수면 장애로 발생하는 직·간접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수면 부족이 근로자의 사망률을 높이거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는 수면 부족이 노동력 감소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수면 부족은 사망률을 높일 뿐 아니라 결근과 근무태만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5개국(미국·캐나다·영국·독일·일본) 기준 수면 부족에 따른 경제적 비용이 해마다 약 6800억달러(약 89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미국에서는 수면 장애로 인한 근로자의 결근시간 합계가 연 1000만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480만시간, 독일은 170만시간으로 조사됐다. 업무 수행능력이 악화할 뿐만 아니라 고용주가 직원 건강관리에 쓰는 비용도 증가시킨다. 미국 기업의 경우 수면 부족에 따른 생산성 감소로 발생하는 손실이 근로자 1인당 연평균 1300~3000달러(약 170만~4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피곤한 대한민국’...전 세계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급성장
한국인의 수면시간은 어떨까? 아쉽게도 한국인의 수면시간은 하루평균 7시간41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016년 기준) 회원국의 평균 8시간22분보다 40분 정도 짧다. 한국 직장인 평균은 6시간6분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한국인)에서 수면 장애, 불면증, 과다 수면, 기타 수면 장애, 상세불명의 수면 장애 등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74만명으로, 2016년 약 49만명보다 43% 증가했다. 2년마다 약 10만명씩 수면 장애 환자가 증가한 것이다. 수면 장애 환자의 90% 정도는 불면증을 호소한다.
전문가는 ‘잠 못 드는 한국인’의 ‘숙면 5적(敵)’으로 과도한 스트레스와 긴 노동·학습시간, 늦게까지 활동하는 사회적 환경,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 등을 든다. 이렇게 수면 부족에 오래 시달리다 보면 돈을 들여서라도 ‘꿀잠’방법을 찾게 된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잠 부족을 호소하는 사람을 위한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가 주목받고 있다. 1990년대에 나온 이 용어는 ‘잠(sleep)’과 ‘경제학(economics)’을 합친 것으로, 수면산업 전체를 의미한다. 숙면을 돕는 침구와 매트리스 등 전통 수면제품부터 수면캡슐·전동침대 같은 아이디어상품, 수면카페 등 숙면공간 서비스, 숙면음료, 스트레스 해소와 꿀잠을 위한 호흡법 강좌, 숙면을 돕는 스마트폰 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수면 보조의료기기 등으로 산업·제품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2010년대 도입돼 관련 슬리포노믹스시장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아직 큰 진척을 이루지 못한 분야 중 하나가 슬리포노믹스다. 수면제 처방과 가전·가구 중심의 국내 슬리포노믹스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약 3조원 안팎이다. 10년 전인 2011년(4800억원)보다 5배 이상 성장했지만 미국(약 45조원)과 일본(약 9조원)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ICT·AI·IoT 접목한 슬립테크로 진화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을 접목한 ‘슬립테크(sleep-tech·잠과 기술의 합성어)’제품이 등장해 주목받는다. 슬립테크란 사용자의 수면 상태를 테스트하고 분석해 그 결과를 제공하고 나아가 수면건강을 향상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기술을 말한다. 최신 슬립테크에는 수면 상태를 체크하는 하드웨어 기술,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소프트웨어 기술, 빅데이터 분석 및 개선방법을 제공하는 클라우드 서비스 등이 통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5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수면 부족을 ‘공중보건 감염병(public health epidemic)’이라고 정의 내린 이후 슬립테크 분야는 블루오션이 되고 있다.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확장할 수 있는 신사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년간 미국 슬립테크 특허 수는 연평균 12% 증가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사태로 건강과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슬립테크산업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면의 상태를 측정하고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전통적 방법에 ICT, AI, IoT 기술이 접목되면서 관련 산업도 커지고 있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전시회인 ‘CES( 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2017년부터 해마다 슬립테크관을 마련하는 등 글로벌 IT기업 다수가 참전하면서 각축전이 펼쳐지는 양상이다.
슬립테크관을 통해 전시되는 기술이 잠과 직결되는 침대·베개 등 전통적인 수면 관련 소비재의 혁신에서부터 빛·온도·소리 관점에서 ‘수면 질(sleep quality)’을 진단하고 개선할 수 있는 제품과 스마트워치·IoT 등 첨단 기술 접목 제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애플이나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기업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테크기업도 슬립테크시장을 정조준한다. 삼성전자는 ‘갤럭시워치’를 중심으로 한 웨어러블 기기와 ‘스마트싱스 솔루션’을 통해 슬립테크시장을 집중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혼 팍 삼성전자 MX사업부 디지털헬스팀장(상무)은 “삼성헬스의 미래 전략은 수면에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LG전자는 스마트 수면케어 솔루션 ‘브리즈(Brid.zzz)’를 조만간 국내 출시할 예정이다. 올해 초 열린 ‘CES 2023’에서 공개한 바 있는 이 솔루션은 수면 유도와 수면 상태를 실시간 분석·관리할 수 있는 제품이다.
뿐만 아니라 신기술을 선보이는 크고 작은 스타트업 등이 슬립테크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글로벌마켓인사이츠에 따르면 전 세계 슬립테크시장은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110억달러(약 14조50000억원)에서 2021년 150억달러(약 19조7000억원)로 불어난 데 이어 2026년에는 320억달러(약 42조2000억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맥킨지는 “수면 부족은 상당한 경제적 비용을 수반하는 만큼 슬립테크 솔루션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모두 증가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내 인생의 중요한 실수들은 모두 내가 피곤할 때 저질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현대인은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기에 수면 문제를 겪는 사람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는 ‘수면기술자(Sleep Technologist)’라는 직종까지 있을 정도다. 슬립테크 관련 디지털 치료제도 개발되고 있다.
향후 슬립테크산업은 수면과 관련한 인류의 건강과 웰빙을 이해하고 관리하며 향상하는 도구로서 상당한 성장 가능성이 있어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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