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지금은 경제활성화에 올인할 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달 기준금리를 5.25%로 동결하며 지난해 3월부터 15개월간 이어진 금리 인상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다만 올해 말까지 두 차례의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번 동결 결정이 긴축 종결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시장이 연준의 피벗(정책전환)을 기대할수록 금융 여건이 완화돼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만큼 시장의 기대를 꺾겠다는 의지의 반영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오히려 뉴욕증시의 3대 지수는 나란히 1% 이상의 높은 상승률을 찍으며 전날 다소 주춤했던 오름세를 되살렸다. 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이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연준의 긴축 의지에 의구심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세계 3대 경제블록의 중앙은행들은 금리 방향과 관련해 완전 대조적인 정책 결정을 내려 글로벌 경제의 탈동조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3.75%에서 4.00%로 인상해 지난해 7월부터 8회 연속 긴축 기조를 유지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은 지난달 사실상의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 1년 만기 금리를 3.65%에서 3.55%로 인하했다. 지난 1년간 각국 중앙은행이 초점을 맞췄던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잡히면서 이제는 자국의 경제 상황에 맞게 통화정책을 조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각국 중앙은행의 탈동조화는 각국이 처한 상이한 물가 하락 속도와 경제성장률에 따른 경제 역풍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행보로 보인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멈췄지만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을 보이면서 한국은행의 향후 행보도 복잡하게 꼬이게 됐다. 연준이 예고한 대로 하반기 두 차례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한국은행이 금리를 동결하더라도 한미 금리차가 최대 2.25%포인트까지 벌어지게 된다. 만약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 금리 차가 더욱 벌어져 환율 변동성 확대, 자본 유출 등 국내 외환·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다행히도 사상 최대 금리 차에도 환율이 1300원 안팎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유가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하락 등으로 물가도 점차 하향 안정되고 있다. 지난해 7월 6%대까지 치솟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2.7%를 기록하면서 21개월 만에 처음으로 2%대에 진입하여 물가 상승 압박도 상당히 줄었다.
문제는 현재 한국 경제가 말 그대로 풍전등화의 위기 상황이란 점이다. 최근 들어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조정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7%로 올렸으나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6%에서 1.5%로 낮췄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국내 주요 기관 전망치 중 가장 낮은 수준인 1.2%를 제시했고, 해외 주요 투자은행 중에는 0%대나 역성장을 전망하는 곳도 있다.
경제성장률 하향 전망의 배경은 중국 리오프닝 효과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해 수출 부진이 고착화되고 대외 수요 감소로 인한 설비투자의 부진에 있다. 지난달 수출은 반도체업황의 회복 지연으로 9개월 연속 감소했으나 무역수지는 에너지 수입 감소 덕에 16개월 만에 ‘불황형 흑자’로 돌아섰다.
설상가상으로 제조업 경기 동향을 나타내는 5월 생산자물가지수가 2개월 연속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어 자칫 경기둔화를 넘어 경기침체까지 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경기 대응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통상적인 경기 부양 수단은 완화적 통화정책과 확장적 재정정책이다. 현재 한미 금리 차가 1.75%포인트로 역대 최대인 데다 연준이 연말까지 금리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도 있어 당장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치기가 부담스럽다. 또한 직접적인 경기부양 효과가 큰 확장적 재정정책을 수행하려해도 국가 재정 상황이 심각하다. 4월 말 기준 국가채무가 1072조7000억원으로 국가채무비율이 50%에 육박하고, 올해 국세수입도 세입 예산 대비 41조원 부족할 것으로 추산돼 ‘세수 펑크’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서민에게 돌아가고 추후 부담해야 할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므로 지금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경제활성화에 올인해야 한다. 정부는 포퓰리즘성 재정지출을 억제하고 재정준칙을 도입해 재정건전화를 추진하되, 취약계층 지원과 미래 성장동력 투자는 지속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물가 상승 압박도 어느 정도 해소됐으므로 연준의 긴축 신호에 연연하지 말고 우리의 경제 상황에 맞게 금리를 동결하거나 가급적 빨리 완화 기조로 전환해야 한다. 결국 경제활성화의 주역은 민간이므로 규제 완화, 구조조정, 노동개혁 등으로 민간 활력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해외 법인에 세제혜택을 주는 법인세법 개정으로 본격화된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의 ‘자본 리쇼어링’ 사례처럼 기업들이 시설투자를 확대해 실질적인 경제활성화를 주도해야 한다.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전 금융통화위원)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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