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이 잉어 문신…“끓는 라면냄비 덴 고통” 참고, 지운다 [영상]

박승연 2023. 7. 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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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보이려고” “예뻐 보여서” 했던 문신
지우는 데 2년…마취 연고만 40분씩 발라
한국은 미성년자 타투 규제 법 아예 없어
잉어 문신을 지우고 있는 한승아(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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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의 피부과 레이저 치료실. 문신 제거 시술을 받으러 온 한승아(16·가명)씨가 치료용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한씨가 한쪽 바짓단을 걷어올리자 허벅지에 커다란 잉어가 한 마리 나타났다. 12살에 충동적으로 새겼던 문신이다. 

‘세 보이고 싶어서’ 했지만

한씨는 다리에 마취크림을 바르고 스며들 때까지 40분 정도를 기다렸다. 그리곤 레이저 시술에 들어갔다. 마취했는데도 레이저가 닿는 곳마다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한씨는 10분이나 고통을 참았지만 오른쪽 허벅지를 뒤덮은 잉어는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다. 의사는 문신을 다 지우려면 길게는 2년이 걸린다고 했다. 그때까지 한씨는 2주에 한번씩 시술대에 올라야 한다. 

한씨는 초등학교 때 친구 따라 문신을 했다. 그는 “주변 애들이 다 문신이 있어 고민 없이 타투샵에 갔다”며 “강해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미리 생각해 둔 타투 도안이 있었지만 결국 시술을 맡았던 타투이스트가 추천한 잉어를 골랐다. 하지만 막상 시술받으면서 보니 잉어는 예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승아씨의 허벅지엔 잉어의 선이 또렷하게 새겨진 뒤였다.  

등에 새긴 봉황을 제거하고 있는 송하나(17·가명)씨도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따라간 타투샵에서 즉흥적으로 문신을 받았다. 예뻐 보여서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와 우정 타투를 새겼던 서다윤(15·가명)씨도 “다른 애들이 없는 걸 하면 더 멋있어 보일 거 같아서” 문신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흐릿해진 문신이 더 이상 예뻐 보이지가 않는다고 했다. ‘흐려진 호랑이 눈이 짝짝이인데 혹시 마루타 당한 거 아니냐’는 친구들 말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한쪽 눈만 흐릿해진 호랑이 문신을 보여주는 서다윤(가명)
레터링 문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서다윤(가명)
“OO역 쪽에 타투샵이 있는데, 거기가 양아치들 많이 오는 그런 데라 미성년자도 다 해줬어요”

즉흥적으로 문신을 했다가 후회하는 미성년자들이 많은 만큼 다른 나라에선 미성년자 문신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미국의 45개 주는 18살 미만 미성년자에게 부모 동의 없이 타투를 해주는 행위가 불법이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에선 미성년자 문신에 관한 내용을 포함해 어떤 기준도 없다.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이 불법이라는 규정만 있을 뿐이다. 

“세 보이고 싶은 마음은, 약하기 때문이라는 걸” 

한국의 타투이스트들도 보통은 미성년자에게 문신을 해주지 않지만, 시술하는 이들도 일부는 있다. 김도윤 타투유니온 사무장은 단순히 세 보이고 싶어 문신을 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약해 빠졌으면 몸에 그림을 그려서 세 보이려고 하냐”고 만류한다고 했다. 그는 “미성년자에게 타투를 해주고 있는 작업자들은 이 산업에서 능력이 부족해 도태된 작업자들”이라며 “(한국에) 제도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다”고 말했다.

김도윤 타투유니온 사무장

초록색·빨간색 들어가면 더 힘든 제거 

한 번 몸에 새긴 문신을 제거하려면 여러 산을 넘어야 한다. 일단 레이저로 색소를 잘게 부숴야 하는데, 이 과정엔 극심한 고통이 따른다. 문신 제거 시술을 받는 서씨는 레이저가 피부에 닿을 때마다 ‘라면 끓이다 실수로 냄비에 닿은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제거 비용도 문제다. 큰 문신을 할 때는 수십만원 정도 들지만, 지울 때는 수백만원이 들기도 한다. 청소년 스스로 부담하기 힘든 금액이다. 한주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피부과 교수는 “문신은 일회성으로 받을 수 있지만, 제거하는 과정에서는 1년 이상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특히 색소가 있는 경우에는 제거 과정이 까다로워진다”고 말했다. 

 한겨레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장 백승준 신부

꿈을 위해서

그래도 미성년자들은 왜 문신을 지우려 할까. 송씨는 “그냥 어느 날 ‘진짜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 학교 열심히 다니고 보니까 (예전이) 너무 후회돼서 지우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한씨도 “꿈도 있고 미래를 생각해서 지우고 싶다”고 했다.

문신 제거를 결심한 미성년자를 돕는 이들도 있다.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와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은 2021년부터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해 ‘문신제거 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청소년들은 1년 동안 시술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장인 백승준 신부는 “문신을 제거하고 싶은 아이들은 대부분 ‘내가 자립하고 싶다’, ‘스스로 내 삶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며 어른들이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2차 피해를 우려해 댓글을 닫습니다.

박승연 피디 ye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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