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점은 속도·피지컬"…페어, 혼혈선수 최초로 여자월드컵행(종합)
'보호자' 자처한 벨 감독 '즉시전력감' 평가…"피지컬·양발 마무리 좋아"
(파주=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제 장점은 속도, 그리고 피지컬이 강하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케이시 유진 페어(PDA)가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에 나서는 콜린 벨 감독의 최종 선택을 받았다.
이로써 한국 축구사상 여자 월드컵 최종 명단에 든 최초의 혼혈 선수가 탄생했다.
대한축구협회는 5일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23인을 발표하면서 페어의 이름을 포함했다.
페어는 명단 발표 후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서 취재진과 만나 "측면에서 1대1 공격 등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중 팀에 기여할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당차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기회를 받아 굉장히 영광스럽다"며 "팀에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든 잘 수행해보겠다"고 했다.
2007년생 페어는 미국 명문 유소년팀 PDA에서 뛰는 선수로, 자신의 설명대로 동 연령대 선수들보다 우위인 체격조건을 살린 저돌적 돌파가 강점으로 꼽힌다.
축구협회에 따르면 페어는 복수국적자다. 지난해 15세 이하(U-15) 대표팀 소집 훈련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등 미국에서도 촉망받는 자원이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무대를 누비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직 어떤 성인 대표팀 소속으로도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에 출전한 적이 없어 FIFA 규정상 결격 사유가 없다는 게 협회의 설명이다.
페어는 이미 지난해부터 우리나라 연령별 대표팀에서 활약 중이다.
지난 4월에는 16세 이하(U-16) 대표팀 소속으로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17 여자 아시안컵 1차 예선에 출전해 2경기에서 5골을 몰아쳤다.
한국 축구사상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에 나서는 두 번째 혼혈 선수가 됐다.
영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장대일이 1998 프랑스 남자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차범근 국가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장대일은 본선 경기에서는 뛰지 못한 터라, 페어가 1분이라도 그라운드를 밟으면 월드컵 무대를 누빈 역대 최초 사례로 한국 축구사에 이름을 남긴다.
더불어 페어는 16세 1개월의 나이로 월드컵에 나서며 '최연소' 기록도 썼다.
20년 전 박은선(서울시청·16세 9개월)의 기록을 깼다.
페어는 지난해 11월 대한축구협회와 인터뷰에서 6세부터 선수로 꿈을 키웠고, 10세 때 남자 유소년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국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던 중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다는 페어는 "목표는 언젠가 대한민국 여자 국가대표팀 선수가 돼 동료들과 FIFA 여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드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 목표의 첫 번째 단계인 태극마크와 월드컵행이 현실이 됐다.
페어는 세계 최고 골잡이로 꼽히는 엘링 홀란(맨체스터 시티)의 결정력을 닮고 싶다고 했다.
U-20 대표팀을 건너뛰는 '월반'을 이룬 페어가 벨 감독의 눈에 들어 출전 시간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FIFA 랭킹 1위로 여자축구 세계 최강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유망주지만, 벨 감독은 체력과 피지컬에 대한 기준이 높다.
지난주까지 오전, 오후 한 차례씩 매일 2회 훈련을 진행해 체력적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지옥 훈련'을 선수들에게 선사했을 정도다.
강도 높은 압박을 요구하는 벨 감독의 성향상 전방부터 상대 빌드업 작업을 방해하기 위해 부지런히 뛰는 손화연, 최유리, 강채림(이상 인천 현대제철) 등이 앞선 평가전에서 중용됐다.
페어는 이 선배 공격수들을 제쳐야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다.
페어를 발탁한 벨 감독은 "피지컬이 좋고 양발을 사용한 마무리 능력도 뛰어나다. 학습 능력도 좋다"며 "잘 적응하고 있고 이 명단에 들 자격이 있음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페어를 일부러 언론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는 벨 감독은 "본인이 가진 능력을 보여주는 데 집중할 환경을 확보해주기 위해서였다"며 "지도자로서 보호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했다.
실제로 벨 감독은 페어가 취재진 앞에 서는 자리에도 동석해 인터뷰를 지켜봤다.
페어를 '즉시 전력감'이라 표현한 벨 감독은 "지금은 실험할 때가 아니다"라며 "(페어는) 월드컵에 승객으로 가는 게 아니다. 명단에 든 소중한 한 명의 선수"라고 강조했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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