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 46일 만에 신약 설계…사상 첫 임상 2상 진입
비용 10분의1, 시간은 3분의1로 단축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신약 개발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설계한 신약 후보가 사상 처음으로 임상 2상시험에 돌입했다. 임상 2상은 임상 1상에서 약효와 안전성을 확인한 약물에 대해 추가 검증과 함께 적정 용량을 결정하는 단계다. 생성형 인공지능이란 인공신경망을 이용한 데이터 학습을 통해 사용자가 원하는 텍스트나 이미지, 동영상, 음성 등의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하는 인공지능을 말한다.
홍콩의 생명공학기업 인실리코 메디슨(Insilico Medicine)은 최근 만성 폐 질환인 특발성 폐 섬유화증(Idiopathic Pulmonary Fibrosis)의 새로운 치료제 ‘INS018_055’를 중국과 미국인 환자 60명에게 투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예정된 임상시험 기간은 12주다.
특발성 폐 섬유화증은 폐 조직이 두껍고 뻣뻣해지면서 숨을 쉬기가 힘들어지는 만성 질환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500만명의 환자가 이 질환을 앓고 있으며, 질환 진단 이후 생존 기간은 3~4년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개발한 약물 후보 가운데 임상 2상 시험 단계까지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9년 이 회사 연구진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약물의 분자구조를 설계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발표한 지 4년만에 이룬 성과다. 이 회사에 따르면 당시 인공지능이 이 약물을 설계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46일이었다.
전통적으로 신약 개발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자원집약적인 작업이다. 일반적으로 신약 후보 가운데 이번처럼 후기 임상시험 단계까지 도달하는 것은 100만개 중 1개꼴이라고 한다. 베링거 인겔하임이 웹사이트에 밝힌 내용을 보면, 신약 후보 물질 발견에서 신약 시판 승인까지 걸리는 기간은 보통 12~15년, 투입되는 비용은 약 10억달러다.
이 과정을 단축하고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등장한 것이 인공지능이다. 인실리코는 두 가지 형태의 인공지능을 결합해 사용했다.
생성형 적대신경망과 강화학습의 합작품
첫째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하나인 생성형 적대신경망(GAN)이다. 2010년대 초반에 선보인 이 알고리즘은 두개의 신경망이 서로 경쟁하는 방식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즉 한 쪽이 어떤 텍스트나 이미지 등을 제시하면 다른 쪽이 이를 평가하는 방식을 되풀이해가며 정답을 찾아낸다. 이번 경우엔 올바른 분자 화학구조를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둘째는 강화학습이다. 기계학습(머신러닝)의 일종인 강화학습은 시행착오를 통해 정답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보상을 받고, 그렇지 못할 땐 점수를 받지 못하는 보상 시스템으로 정답을 유도한다. 강화학습은 체스나 바둑,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에서 탁월한 성과를 냈다.
인실리코는 두 가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해 새 약물 후보를 설계하는 것과 함께 이것이 표적 질환과 얼마나 잘 결합하는지 측정하고, 임상시험 결과까지 예측하는 방식으로 개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했다.
인실리코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4억달러 이상의 비용과 최대 6년이 소요됐을 것을 인공지능 덕분에 비용은 10분의 1, 시간은 3분의 1로 단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불과 2년 반만에 임상1상시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인실리코는 현재 항암제를 포함해 30여개의 인공지능 약물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인공지능을 이용해 12가지의 전임상 약물 후보를 발견했다. 이 가운데 임상시험에 들어간 것은 3개였고, 그 중 하나가 이번에 임상 2상시험에 진입했다.
회사 설립자인 라트비아 태생의 과학자 알렉스 자보론코프(Alex Zhavoronkov)는 “인공지능 개발 약물의 첫 임상 2상 진입은 딥러닝으로 생물학과 화학을 연결하는 종단간 접근 방식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며 “이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약물 개발 분야에서 중요한 이정표”라고 말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향후 10년에 걸쳐 인공지능을 이용한 신약 50여가지가 개발돼 500억달러 상당의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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