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伊 성악콩쿠르에 ‘이응광 특별상’ 생긴다…‘동양인 최초’
대회 사상 첫 동양인 이름 딴 상 제정
“팍팍한 유럽 유학생활에 단비되길”
2008년 콩쿠르 사상 첫 바리톤 우승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세계적인 성악콩쿠르인 ‘리카르도 잔도나이 국제콩쿠르’가 바리톤 이응광의 이름을 딴 특별상을 신설했다. 이 콩쿠르에 음악가의 이름을 딴 특별상이 제정된 것은 한국은 물론 동양인으로서도 최초다. 이와 함께 그는 이 대회 심사위원으로도 위촉됐다.
5일 음악계에 따르면, 지난 3일부터 이탈리아에서 열리고 있는 ‘리카르도 잔도나이 국제콩쿠르’는 올해부터 ‘2개의 이응광 특별상(2 Premi Eung Kwang Lee)’을 신설했다. 이 상을 받는 참가자에게 각각 2000유로, 총 4000유로의 상금을 준다.
현재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가 중인 이응광은 “내 이름을 딴 상이 제정됐다고 들었을 때 무척 놀랐다”며 “두 명에게 주는 상과 상금이 팍팍한 유럽 유학생활에 단비 같은 기쁨과 힘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응광은 지난 2008년 콩쿠르에 참가해 1위를 석권한 데 이어 3개의 특별상도 함께 받았다. 해마다 남성과 여성의 공동 우승 수상자를 선호했던 콩쿠르 측은 당시 단독 우승자로 이응광을 뽑았다. 콩쿠르 사상 첫 ‘바리톤 우승자’이기도 하다.
콩쿠르 심사위원장이자 이탈리아 ‘무지카 리바 페스티벌(Musica Riva Festival)’의 총예술감독 미에타 시게레(Mietta Sighele)는 “이응광은 동양인의 가면을 쓴 이탈리아 나폴리 가수”라며 “그의 따뜻한 소리를 가슴 깊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응광은 이 대회 우승 이후 지난해까지 해마다 ‘무지카 리바 페스티벌’의 오페라와 협연에 초대받고 있다.
특히 이 페스티벌에선 이응광의 리사이틀 무대를 수차례 올리기도 했다. ‘무지카 리바 페스티벌’이 특정 성악가의 리사이틀을 연 것은 이응광이 최초다.
페스티벌과 오랜 인연을 맺은 이응광은 축제에 나오는 영아티스트들의 출연료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해 4000유로를 기부, 콩쿠르 측은 이를 바탕으로 ‘이응광 특별상’을 제정했다. 국제 성악콩쿠르에서 한국인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응광의 이름을 딴 특별상의 제정과 심사위원 위촉은 그간의 관계에 대한 신뢰와 존중의 의미로 해석된다.
시게레 심사위원장은 “우리는 오랫동안 그를 가수로서 사랑했고 그의 행보를 늘 응원해왔다”며 “콩쿠르의 우승자를 뽑는 심사위원으로 모시게 돼 영광이고, 이응광의 이름을 딴 특별상을 만들 수 있어 진심으로 기쁘다”고 말했다.
이 콩쿠르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활약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가’ 리카르도 잔도나이를 기리기 위해 1993년 처음 열렸다.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콩쿠르 중 가장 많은 상금(총 4만유로)을 주는 이 대회는 유럽의 주요 오페라극장장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유럽 극장의 등용문’으로 여겨진다. 이응광 역시 이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같은 해 8월부터 스위스 바젤 오페라하우스에 입단하며 유럽 극장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올해 콩쿠르엔 유달리 한국인 참가자가 많다. 전 세계 43개국에서 222명의 성악가가 참가하며, 그중 한국인은 절반에 해당하는 111명이 출전했다.
참가자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이탈리아 전역은 물론 베를린, 하노버 등 독일 전역 음악대학 학생과 유수 극장에서 솔리스트, 합창단으로 활동하는 많은 한국인 성악가가 참가했다. 20대 초반의 서울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들도 서울에서 지원했다. 최근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김태한 역시 이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현지에서 이틀에 걸쳐 예선심사를 진행했고, 5일부터 ‘세미파이널’ 심사를 앞두고 있는 이응광은 “콩쿠르엔 유럽 극장에서 이미 활동 중인 프로가수들도 대거 참가했고, 훌륭한 기량을 선보인 한국 출신의 독일 극장가수도 있었다”며 “국적에 차별을 두지 않고 실력으로만 평가하는 이 콩쿠르의 특성 덕에 한국 성악가들이 공정하게 심사를 받을 수 있는 무대라고 인식해 많은 인원이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 콩쿠르에선 프로가수들도 좋은 무대를 보여줬지만 가능성 있고 매력적인 신진 가수들이 좋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20여년간 성악가로 ‘음악의 길’을 걸어온 이응광은 국제콩쿠르의 심사위원, 이천문화재단 대표로 몸담으며 연주자로서 활동을 넘어 빈약한 토양에서 활동하는 성악가 후배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리카르도 콩쿠르엔 그의 이름을 딴 상을 비롯해 ‘이천아트홀상(Prize Icheon Art Hall)’과 ‘이천문화재단상(Prize Icheon Cultural Foundation)’도 제정, 수상자는 오는 10월 이천 국제음악제 무대에 오른다. 국제무대와 국내무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이다.
그는 “예전부터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로 남는 선배가 되고 싶었다. 유럽에선 오페라가수로, 국내에선 클래시컬가수로 활동하고 행정가로서 후배들에게 우리의 길은 끊임없이 진화되고 넓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유럽에선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국내엔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후배들에게 좋은 무대 기회를 만들어줄 계획”이라는 바람도 들려줬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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